[시가 있는 휴일] 단풍나무

입력 2023-01-12 17:51


나무들이 갑자기
몹시도 행복해졌어
비가 내려
지나가는 흰 여름비

빗속에서 움직이는 나무들
앞뒤로 흔들리며 무거운 꽃 머리칼 휘날리고
어깨 뒤틀고
땅에 묶인 가느다란 발마저
기분 좋게
반짝거리지

아무도 그걸 증명할 순 없지만 바보라도 느낄 수 있지
나무들 이제 온통 감전되고 그 반짝거림은 동전이 아니라
깊고 깊은 굴에서 쏟아져 나오지
오 깊이 뿌리 박혀 인내하는
어여쁜 나무들

부디 많은 날들에
은빛 동그라미들에 몸 던지고
늪과 목초지 너머로 머리 흔들고
서둘러 지나가는 긴 도로와 들판들 가장자리를 장식하기를

-메리 올리버 시집 ‘서쪽 바람’ 중

메리 올리버는 평생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 세계가 전해주는 경이와 위로를 언어로 표현해온 미국 시인이다. 이 시는 여름비를 맞으며 행복에 겨운 듯 몸을 떠는 나무들의 움직임과 반짝거림을 묘사한다. 그 나무들과 그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시인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