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8개월가량 ‘황제 도피’ 행각을 벌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국내로 압송되면 검찰에 쌓인 각종 쌍방울 비리 의혹 수사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서 촉발된 쌍방울의 여러 의혹을 두고 검찰 안팎에선 “김 전 회장이 한국에 들어와야 사건이 해결된다”는 말이 나왔었다.
검찰은 태국 당국과 협력해 조속히 국내로 데려온다는 방침이지만, 김 전 회장은 송환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법원에 불복 소송 등을 낼 경우 최소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태국의 한 골프장에서 검거된 김 전 회장은 12일 현지에서 불법체류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불법체류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송환 거부 소송으로 버틸 가능성도 있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비롯해 20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 등 검찰이 쥐고 있는 여러 쌍방울 관련 수사의 핵심 인물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이제 김 전 회장이 송환돼야 해결되는 부분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여러 갈래로 흩어진 쌍방울 의혹이 서로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는 김 전 회장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안이 쌍방울 사건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다. 이 대표의 2018년 공직선거법 사건 변호사 수임료를 쌍방울 측이 전환사채 발행과 자금세탁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대신 내줬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쌍방울이 2018~2019년 직원들을 동원해 중국으로 64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72억원)를 밀반출해 북한으로 건넸다는 의혹 역시 당시 결정권자였던 김 전 회장 조사가 이뤄져야 남은 퍼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 연루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이미 지난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회장은 부하 직원들과 현지 교포 등의 지원을 받으며 황제 도피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태국으로 건너가 김 전 회장의 호화 생일파티를 열고, 한국에서 한식과 해산물, 고급 양주 등을 공수해 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들이 도피처까지 찾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화려한 8개월 도피가 막을 내린 곳도 현지 골프장이었다. 그는 역시 해외로 도주했던 양선길 현 쌍방울 회장과 태국 빠툼타니 소재 한 골프장을 방문했다가 한국 경찰 주재관의 정보를 받고 출동한 현지 이민국 검거팀에 붙잡혔다.
검찰은 지난 9일 김 전 회장의 도피를 돕고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쌍방울 관계자, 폭력조직 출신 지인 등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