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윤정부의 성패 좌우할 ‘2023년 개혁’

입력 2023-01-12 04:02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초기 6개월을 수습기간처럼 보냈다.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과감한 정책 드라이브나 눈에 띄는 인물의 발탁도 없었다. 청와대 이전과 도어스테핑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대통령다움의 손상이라는 대가도 컸다. 결국 허니문 기간을 벌어 5년을 버티던 다른 정권과 달리 딱히 짚이는 이유도 없이 지지율이 20%대 중반까지 떨어지는 곤욕을 치렀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 탄핵까지는 아니더라도 퇴진은 요구해야 한다고 나섰고, 촛불세력은 주말 집회 참가자 수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6개월의 수습이 도움이 됐는지 윤 대통령은 연말 즈음에 지지율 상승과 함께 국정 장악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나라를 위해 다행스러운 반전이다.

2023년은 윤석열정부의 성패뿐 아니라 나라의 30년 미래를 좌우하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초 북방 외교와 세계화 개혁의 성공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듯이 지금은 또 다른 30년의 로드맵을 그려야 할 대전환기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새 외교 노선을 천명하고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동시에 개헌까지는 아니더라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 개혁도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꺼내든 개혁의 화두는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였다. 때마침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9일 ‘87년 체제’를 극복하자며 24명의 전문가로 ‘헌법 개정과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잘만 하면 2023년은 선진국 진입 이후의 한국에 맞게 정치외교, 경제사회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글로벌 공급망 재편뿐 아니라 지정학적·경제적 불안정성이 팽배한 복합위기 상황에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개혁을 통한 돌파다. 우리는 늘 위기 때마다 전화위복의 역전 드라마를 쓰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다만 이제는 벤치마킹할 선진 사례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코치도, 세계무역기구(WTO)라는 심판도 없다. 30년 전 ‘넘사벽’이었던 나라들도 팬데믹 이후 격변의 대전환기가 닥치자 각자도생의 길을 찾기 바쁘고 국제경제기구들도 할 말을 잃었다. 통상국가 대한민국은 그들보다 좀 더 절박하고 위태롭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만큼 개혁을 통한 돌파의 절박성도 크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감당할 역량과 계획을 갖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노동, 교육, 연금 개혁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된 사회정책의 핵심 이슈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가 무엇이고 이를 지휘하는 디자이너와 사령탑은 누구인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대통령 업무보고대로라면 각 부처가 각개약진 자세로 가능한 한 빨리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법안 제출이나 무슨 위원회 설치가 개혁의 끝은 아니다. 노동개혁의 경우 법치주의 노사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시장 개혁 메뉴들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밀어붙이기용으로 채워졌다. 고용노동부 설명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외부적 환경이 급박하고 노동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굉장히 높아 일정에 맞춰 추진해야 한다”며 “결론을 빨리 내고 가는 식으로 시급성·절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불길한 조짐이다.

이런 접근으로는 3대 개혁의 주요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너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 되는 여야 대치 상황에서 기득권 세력은 정치권과 연합해 ‘중꺾마’의 자세로 나올 것이고 사회는 진영 대결의 대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더구나 내년 총선 승패에 정권 명운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 시기에 누가 나서서 지지 세력의 뜻을 꺾고 양보와 타협을 설득하겠는가. 정쟁만 키우고 개혁은 실종되는 최악을 피하려면 기득권을 깨겠다고 나설 게 아니라 모두가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도록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우선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솔선수범 자세로 기득권 내려놓기를 하면 좋겠다. 그래야 3대 개혁 돌파구도 열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무원과 교사, 교수와 의사 등 기득권 상단부터 연금과 호봉제 개혁, 대학 개혁과 의대 정원 조정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양보하는 태도를 보일 때 노동 개혁도 과감해질 수 있다.

지금은 기득권 세력의 중꺾마를 자극하기보다 ‘변화하려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설득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다. 부디 윤정부의 개혁이 남 탓만 하다 빈 수레만 끌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