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송악읍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대상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박연주(34) 원장은 학원 출석부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수업당 최대 15명까지 등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출석부지만, 정원을 채운 수업을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 초만 해도 개설된 수업 대부분은 정원이 차 있었고, 일부 수업엔 대기 인원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4일 학원을 찾아갔을 때는 5명의 수강생만 보였다. 박 원장은 “많을 땐 수업당 20명까지 인원을 늘려도 사람이 가득했는데 다 옛날 일이 됐다”고 말했다.
미술학원은 특성상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등록률이 떨어진다. 보습 학원 위주로 사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치부 아이들이 들어와야 충원이 되는 구조인데, 미취학 아동들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는 것이다.
당진은 지난해 지방소멸 위험 지역에 진입했다. 20~39세 가임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눴을 때 0.5 미만인 곳이 됐다는 얘기다. 당진은 지난해 3월 기준 0.47이었다. 출생아 수도 꾸준히 감소해 2021년 처음으로 1000명대가 깨져 953명을 기록했다.
박 원장은 지역에서 2개 학원을 운영 중이다. 많을 땐 1호점에 130명, 2호점에 100명의 아이가 수업을 듣느라 학원이 내내 북적였다고 한다. 이번 달에 등록한 원생 수는 1호점 80명, 2호점 70명. 줄어든 학생 수는 곧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 박 원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관리 직원을 줄이고 원장이 직접 업무를 보고 있다”며 “저출산의 출구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미술만 가르쳐서는 빠져나가는 아이들조차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보육’ 역할까지 도맡았다. 미술학원 로비에 아이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계단식 소파를 설치하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은 오후 6시20분에 끝나지만, 박 원장은 이날도 직장인 부모들이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 오후 7시가 넘어서도 남은 아이들을 돌봤다.
당진 신평면에서 14년째 영어·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황태호(43) 원장도 아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상황을 실감한다고 했다. 수강생 숫자가 감소하면 학원비를 올려야 하지만, 무작정 올릴 수도 없다. 이 학원은 최근 원비 10%를 올렸지만, 학원비 부담 증가가 원생 감소로 연결될 수 있어 추가 인상은 어렵다고 한다. 황 원장은 지금의 추세 대로라면 4년쯤 뒤엔 학원을 운영할수록 적자 상황이 올 거라고 보고 있다.
학원들이 지역 살리기에 나서는 것도 인구 문제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황 원장은 더 많은 사람이 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신평면 주민자치위원회 등 지역 발전 활동에 열심이다. 그는 “다른 학원들이 다 문을 닫더라도 이 지역 ‘마지막 학원’으로 남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