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메리츠금융지주의 깜짝 발표에 시장과 언론에선 연일 찬사가 쏟아졌다. 통상 대기업들은 핵심 계열사의 물적분할을 통해 ‘쪼개기 상장’에 나서고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이와 배치되는 행보를 보인 탓이다. 메리츠 측은 “주주환원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과거 높은 배당과 연봉으로 논란이 된 최대주주 조정호 회장의 배당금은 이번 자회사 편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 시일 내에 줄어든 지분율도 회복할 공산이 크다. 주주환원이란 말의 이면에는 오너일가의 커다란 실익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메리츠 고배당의 역사
메리츠금융그룹은 재계 순위가 높은 대기업이 아니었지만 회장의 수입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독특한 역사가 있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의 막내아들로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해 메리츠를 이끌었다.
2012년 96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메리츠금융에서 조 회장은 보수와 배당으로 고액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다. 경영 활동과 관계 없이 고액의 보수 및 중복 성과급을 수령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약 50억원의 성과급을 포기했다.
이후 메리츠금융은 배당성향을 높였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 중 주주에게 가는 배당금 비율을 뜻한다. 조 회장 입장에선 고액 보수 논란으로 뭇매를 맞은 상황이기에 배당을 늘리는 게 최선이었다. 배당성향 극대화 전략 속에 조 회장의 지갑은 두둑해졌다. 2015년 164억원이던 조 회장의 배당금은 2020년 891억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순자산 5조원 이상 71개 그룹에도 들지 못한 메리츠금융이었지만 개인 배당금 순위에선 자산 246조원의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보다 앞섰다.
그런데 메리츠금융은 2021년 5월 돌연 배당성향을 10%로 축소하고 대신 자사주 매입 후 소각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직전 3년 동안 메리츠금융과 메리츠화재의 배당성향이 각각 평균 66%, 35%였던 만큼 이 정책은 폭탄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선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번 메리츠화재와 증권의 자회사 편입이 발표되면서 배당성향 축소가 조 회장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 회장이 가져가는 배당금은 크게 줄었지만 배당 대신 택한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조 회장의 지분율 방어에 유리한 환경을 사전에 조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 3월 말 기준 72%였던 조 회장의 지분율은 지난해 합병 발표 시점에 76%까지 늘어났다.
과실은 최대주주에게 더 많이
메리츠금융은 지난해 11월21일 자회사 합병을 깜짝 발표한다.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회사는 상장 폐지되고 메리츠금융만 상장사로 남게 된다.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의 합병은 각각 다음 달 1일과 4월 5일 마무리된다. 합병으로 조 회장의 지주 지분율은 76% 수준에서 약 46%로 하락한다. 이를 두고 메리츠 측은 조 회장의 희생을 통해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우선 이번 합병 시점이 절묘하다. 발표 당시 상장 3사 시가총액에서 메리츠금융 비율은 33.9% 수준으로 최근 10년 평균(29.8%)보다 높다. 2021년 메리츠금융 주가가 350% 폭등하며 화재(130%)와 증권(40%)을 크게 압도한 영향이다. 다시 말해 메리츠금융 가치가 자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시점이라는 뜻이다. 반면 지주사 주식을 덜 받게 된 자회사 주주에게는 불리한 타이밍이다. 자연스럽게 조 회장의 지배력 약화는 최소화된다.
교환비율 유불리는 수익률 차이로 이어진다. 증권가의 예상처럼 합병 후 메리츠금융 시총이 8조원에 이른다고 가정하면 자회사 주주의 보유주식 가치는 33%가량 증가한다. 반면 조 회장의 지분가치는 47% 오른다.
당기순이익 중 50%를 주주환원하겠다는 발표에 투자자들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이는 배당성향이 50%라는 뜻이 아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포함된다. 현재처럼 10%만 배당하고 나머지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메리츠금융이 배당과 자사주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는 지에 따라 주주들의 체감 효용은 달라진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배당성향이 10%였을 때 배당수익률은 3%, 배당성향이 50%였을 때의 수익률은 15%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실제로 2021년 이후 그랬듯이 배당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 비중을 높이면 발행주식수가 줄어 조 회장의 지분율은 다시 높아진다. 조 회장 지분율이 50%를 넘어 지배구조 개편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다.
마침 올해부터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서 보험사들의 순익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서 조 회장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의 순이익은 올해 3000억~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자회사가 현재 수준의 이익을 유지한다고 가정하고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순익 증가분을 고려했을 때 조 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올해 900억원, 2024년엔 1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배당성향을 줄이면서 2021년 200억원대로 감소했던 배당금을 역대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메리츠 관계자는 “메리츠에게 대주주 1주와 소액주주 1주는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앞으로 기존에 약속한 주주환원 정책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