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의 한 어린이집 2층 보육실. 15명이 정원인 이곳에 지난 5일 아이들 5명이 남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질을 배워가며 밥을 먹고 있었다. 합천은 대표적인 소멸우려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올해로 6살이 된 5명의 아이는 새 학기가 되면 유치원으로 가야 한다. 이들이 지내던 2층은 앞으로 다닐 아이들이 없어 통째로 비우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학부모들이 자녀 입소를 위해 줄을 서 대기하던 어린이집이었다.
지난해 이 어린이집은 33명을 보육했다. 정원(7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근 6~7세 반이 문을 닫았고, 올해 0세 신생아도 입소 예정인원이 단 2명뿐인 상황이다.
27년 동안 보육교사로 이곳을 지켜온 신숙현(50) 원장은 지역소멸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장 내년부터는 어린이집 문을 계속 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며 “지역 어린이집 원장 모임에 나가면 모두가 ‘아이가 없다’며 불안해한다”고 토로했다. 폐업 소식도 이어진다. 인근의 A어린이집도 원생을 채우지 못해 다음달 28일부로 폐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합천군은 최근 3년간 어린이집 대비 영유아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정원 대비 원아 수는 71.5%였는데 2021년 68.5%, 2022년 67.6%로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린이집이 폐업하면서 많은 보육교사가 실직했다. 당장 A어린이집 소속 교사 6명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재취업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신 원장은 “합천 내에서는 새로 개원하는 어린이집이 없어 직장을 잡기 어렵고, 차량으로 40분가량 떨어진 진주시가 그나마 아이들이 있지만 그곳에서도 새로 채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 보육교사들은 언제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농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는 노령층을 돌보는 일”이라며 “줄곧 아이만 돌봤는데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내가 돌봤던 아이들이 어른이 돼 다시 우리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길 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제는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마저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는 경향이 만연하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합천=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