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명박정부 1년 차였던 2008년 7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났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MB) 대통령의 경쟁 상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이라고 강변했다. 이 말을 뒤집어야 당시 MB청와대의 속내가 보인다. 발언의 핵심은 ‘박근혜는 MB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국내 정치를 빗댄 얘기였지만,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경쟁 상대라는 표현은 당연하면서도 신선하게 각인됐다.
#2. 재작년 10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당시 경선 후보에 대해 “그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추진력”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검찰총장들이 대부분 딴짓을 하거나 권력의 압력에 순응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권력의 압력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그 사람은 최고 권력과 맞서는 용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최대 문제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지난해 말 화물연대의 파업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기류에 올라탔다. 지난 6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7%를 기록했다. 긍정 평가 항목 중에서 ‘노조 대응(14%)’이 가장 높았다.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에 지쳤던 중도·보수 진영은 ‘인기가 없더라도 개혁하겠다’는 발언을 크게 반겼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그동안 민주노총에 맞선 대통령이 있었나”라면서 “국민 사이에서 윤 대통령은 진짜 거대 노조 문제를 손볼 것 같은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4. 글로벌 경제 위기가 덮치며 국제사회에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안보와 경제의 분리 대응이 특징이다. 한국산 전기차(리스 등 상업용 판매 경우는 제외)를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 예다. 북핵 문제에선 혈맹이라고 하지만, 경제 문제에선 남인 것이 현실이다. 안보 문제는 또 어떤가. 북한의 미사일은 수시로 동해에 떨어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해 벽두부터 남측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며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고 위협했다. 북한 무인기는 우리 상공을 날아다녔다. 일본은 안보문서를 개정해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보유를 선언했다. 북한 미사일 기지를 먼저 때릴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이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담대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긍정 평가한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니다.
#5.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거대 노조는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포퓰리즘 정책도 한국을 서서히 갉아먹는 사회적 암이다. 양극단으로 갈라진 국론 분열의 폐해도 심각하다. 이런 것들이 ‘한국병’이다. 윤 대통령이 일합을 겨뤄야 할 상대다. 윤 대통령이 외부적으로 맞서야 할 대상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고, 국제 경제·안보 이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것은 무서운 사실이다.
지금 여권의 최대 소원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경쟁 상대는 더불어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도, 국민의힘 내부의 비윤(비윤석열)계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내외부의 진짜 적과 맞서 이겼을 때, 그토록 원하는 총선 승리는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