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보다 경험·일상속 스민 기술… CES서 펼쳐진 혁신의 향연

입력 2023-01-10 04:06
현대모비스의 글로벌 인재 초청 행사에 참가한 유학생들이 지난 6일 전시관에서 첨단 모빌리티 기술을 체험하는 모습이다. 현대모비스 제공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처음 열린 ‘CES 2023’이 8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나흘간 관람객 11만2000명이 찾아왔다. 미·중 갈등 탓에 중국 업체는 대거 이탈했지만, 한국 기업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올해 CES에서 기업들이 내세운 건 ‘제품’보다 ‘고객 경험’이다. 모빌리티는 점점 인간과 교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건강한 삶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먼 미래에 상용화될 혁신적 기술보다 일상에 스며드는 ‘캄 테크’(calm-tech·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가 흐름을 주도했다.

올해 CES에서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제품을 깜짝 공개하는 것보다 각자 지향하는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로 승부를 걸겠다는 취지다. CES 2023에 참가했던 한국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전체 부스를 둘러본 뒤 “참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서비스,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뀐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삼성이 대표적 사례다. 최대 규모의 전시관을 꾸린 삼성전자는 신제품을 의도적으로 뺐다. 대신 스마트싱스를 토대로 15개 가전 브랜드의 제품을 연결해 제어·관리하는 기술·서비스를 선보이며 ‘초연결’을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모빌리티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모빌리티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선보였다. 일본 소니는 완성차 업체 혼다와 합작해 만든 전기 콘셉트카 ‘아필라’를 첫 공개했다. 아필라는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지향한다. 아우디는 차량 내 가상현실(VR) 게임이 가능한 ‘VR인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선보였다.

삼성전자에서 인수한 전장 전문업체 하만은 업계 최초로 시각·인지적 부하를 측정해 운전자의 눈 활동과 심리 상태를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레디 케어’, 브랜드 오디오 경험을 제공하는 업계 최초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제품 ‘레디 온 디맨드’ 등을 내놨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완전 자율주행이라는 예정된 미래에 맞춰 기업들이 차량 내 서비스 등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도 자동차 운영체제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ESG에 초점을 맞춰 ‘그린 임팩트’를 강조했다. 탄소 중립을 선언한 파나소닉은 전시관 입구에 태양광으로 광합성을 하는 나무를 배치했다. 나뭇잎 모양의 태양광 모듈이 빛을 받아 밑둥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파나소닉은 나무 아래 콘센트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게 했다. 기술(그린테크)이 일상에 스며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이다.

한국의 4년차 스타트업 에이슬립은 인공지능(AI)으로 숨소리, 흉복부 움직임을 분석하고 수면 장애 등을 진단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솔루션을 내놨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마이크가 설치된 기기만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수면 단계를 측정할 수 있다. 스타트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비대면, 원격의료가 키워드가 됐고 슬립테크,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흐릿하고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 일상에서 투자수익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이번 CES의 주인공”이라고 분석했다.

라스베이거스=황인호 기자 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