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도 진땀… 아파트 18층, 4.5m 고드름 제거 대작전

입력 2023-01-09 00:03
지난 6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남양주소방서 119구조대 대원이 로프를 타고 고드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크기도 크고 위치도 담장 너머에 있네요. 이거 꽤 오래 걸리겠는데….” 지난 6일 오전 9시45분. 대형 고드름이 생겼다는 신고에 경기도 남양주의 한 18층 아파트 옥상으로 출동한 남양주소방서 119구조대원들 앞에 높이 4.5m, 너비 40㎝의 고드름이 나타났다. 옥상 난간 옆 배관을 타고 흐른 물이 계속된 한파에 얼어붙어 거대한 고드름으로 자란 것이다. 난간 바깥쪽에 생겨난 고드름은 누그러진 추위에 조금씩 녹고 있었다. 만약 고드름이 추락하면 옥상 바닥이 아닌, 18층 아래 아파트 화단으로 향할 것으로 보였다.

박정훈 구조대장은 “올겨울 본 고드름 중에 가장 크고 (처리하기가) 어려워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드름의 위치가 옥상 바깥이다 보니 로프 등반은 필수였고, 얼음 파편이 잘못 떨어지면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고드름이 배관을 휘감고 있어 함부로 제거하려 들면 배관이 손상될 위험도 있었다.

고드름을 처음 발견해 신고한 아파트 관리소장 40대 허모씨도 현장을 지켜봤다. 날이 밝아 구조대원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허씨는 “혹시라도 고드름이 떨어질까 걱정돼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앞두고 대원들은 ‘작전 회의’까지 진행했다. 이어 각자 맡은 역할대로 로프를 타고, 대형 뜰채로 깨진 얼음 조각을 받아내는 등 ‘고드름 제거 작전’에 돌입했다. 함께 온 진압대원들은 파편 낙하에 대비해 1층에서 주민들을 통제했다.

헬멧과 고글, 망치와 정으로 무장한 서현욱(41) 소방장이 선봉에 섰다. 그는 50m가 넘는 높이에서 장비를 점검한 뒤 “이상 무”를 외치더니 그대로 두 줄 로프에 체중을 실었다. 그러고는 도끼를 들어 고드름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분투로 고드름 7할 정도가 사라졌다. 구조대에서도 체력이 좋기로 유명한 서 소방장이지만 작업이 1시간쯤 이어지자 도끼질에 힘이 부치는 듯했다. 다른 대원 두 명이 바통을 이어받아 두 줄 로프에 몸을 맡긴 채 남은 얼음들을 부숴 나갔다.

3시간이 넘는 아찔한 작업 끝에 고드름은 말끔히 제거됐다. 박 구조대장은 “이런 고드름을 시민이 직접 안전하게 제거하기는 쉽지 않고, 그렇다고 방치했다가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고드름은 발견 즉시 119에 신고하는 게 가장 좋다”고 당부했다. 주민 신모(73)씨는 “그 큰 고드름이 통째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고드름은 한파가 다소 꺾이는 해빙기에 가장 위험해진다. 날이 풀리고 얼음이 녹으면 높은 곳에 달려 있던 고드름이 그대로 추락해 지상의 시설이나 행인을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1월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음료 배달을 하던 50대 여성이 18층에서 떨어진 고드름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소방청 출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만 전국에서 1166건의 고드름 제거 신고가 접수됐다. 2020년 12월의 333건, 2021년 12월의 332건보다 3.5배가량 많은 숫자다.

남양주=글·사진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