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강서구의 한 건물 반지하에 있는 주영광교회(임귀복 목사). 교회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임귀복(62) 목사는 동료 목사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교회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주영광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의 일환으로 개최한 ‘일진캠프’ 현수막이었다.
일진캠프는 2015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 연합 수련회로, 이 캠프에 참석하는 청소년은 조금 특별하다. 세상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위기청소년이다. 대부분의 위기청소년은 보호자가 없어 삶의 어려운 점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임 목사와 동역자들이 생각해 낸 묘안은 이들에게 1대 1 멘토를 연결해 정서적 교감과 물질적 후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방황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지수(가명·24)씨는 일진캠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현재 한 신학대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임 목사는 올해로 위기청소년 사역 12년차인 베테랑 사역자다. 목사인 동시에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위원인 그는 지역사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과 범죄 예방 활동을 동시에 하고 있다.
2011년 노방전도를 하던 중 굶주린 채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교회로 데려와 돌봐준 것이 위기청소년 사역의 첫 단추였다. 임 목사는 “아이들에게 밥 한 끼, 물 한 컵 주는 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사건”이라며 “그만큼 방해도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위기청소년 사역의 핵심은 ‘연합’
임 목사는 위기청소년 사역의 핵심은 ‘교회 간 연합’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도 대표로 있는 ‘위키코리아’(위기청소년선교연합회)를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수많은 청소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걸 절감했고, 2016년 함께 사역하던 교회·단체와 ‘위기청소년 통합사역’ 확장을 위해 이 단체를 세웠다. 단체의 이름도 사실 청소년들의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임 목사의 도움을 받은 이들을 합치면 200명이 넘는다.
임 목사는 “혼자서 사역을 이끌어 가니 버거운 부분이 있었다”며 “교회와 단체가 연합해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한 명의 청소년 주변에는 여러 문제가 에워싸고 있다”면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임 목사의 핸드폰은 쉴새 없이 울려댔다. 인터뷰 당일 새벽에도 한 청년이 자살 기도를 해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앞서 전날에는 의료사고로 모친을 잃은 또 다른 청년이 임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위기청소년들은 성범죄와 사기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벌어진다. 임 목사는 “아이들이 유년 시절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롭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잘못된 길을 통해 느끼는 쾌락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를 임 목사는 ‘각종 위기에서 자생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대와 차별, 증오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마냥 행복하게 꿈꾸며 살 수 있겠어요. 저는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은 하나님이 맡기신 미래
임 목사가 청소년·청년 사역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우리의 미래니까요. 이 아이들은 남의 아이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맡기신 미래에요.”
임 목사는 위기청소년 사역이 절대 만만치 않다고 했다. 때론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을 마주하며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전진하는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는 자가 종이예요. 하나님께서 제게 시키신 일은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겁니다.”
아이들을 향한 비전은 명료하다. 위기청소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통해 한국교회를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믿는다”며 “하나님이 분명히 이 사역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 길이 평탄치는 않다.
임 목사는 “대부분의 위기청소년은 부모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며 “아이들에게 화목하고 정상적인 가족의 상을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한 어른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한 영혼이 돌아올 때 맛보는 기쁨과 보람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힘들어도 참 행복해요. 진짜 보람 있어요. 그러니 많은 평신도분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교회도 남의 교회 일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십시일반 힘을 합치면 좋겠어요.”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