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범죄자 한 명 때문에 수억원대 예산을 쓰고 경찰, 시민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화성시민 바람대로 ‘제시카법’이 통과돼 봉담읍이 안전한 동네가 됐으면 합니다.”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수원 발발이’ 박병화의 거주지를 감시하는 ‘시민 안전지킴이’ 김경식(62)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30년 경력의 경찰 출신인 그는 지난해 10월 박씨 출소 이후 다른 시민들과 교대로 박씨 집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두순의 이사를 결사 저지했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주민 A씨는 제시카법이 “진즉에 도입됐어야 할 법”이라고 말했다. A씨는 “조씨가 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제시카법이 통과되면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신년사에서 도입 의사를 밝힌 ‘제시카법’(성범죄자 주거지 제한법)이 실제 입법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법안 발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법무부가 발주한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다음 주 중 나온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의 지리적 상황 등이 다른 점을 고려해 다양한 안을 만들고 있다”며 “거주지 제한 및 장기간 시설 격리, 성범죄자 법정형 하한 상향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제시카법이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의견부터 주거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 등이 엇갈린다.
한국형 제시카법의 핵심 쟁점은 도심 지역 인구밀도가 높은 국내 특성상 거주지 제한 규정을 두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미국법대로 학교 주변 300m 주거 제한을 하다 보면 사실상 국내에 살 곳이 없다.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찬성 측에서는 최대한 미국법 원안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학교와 거리가 떨어진 주거지도 많아 도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0m 이내 거주 금지의 경우 지방은 도입이 가능하다. 도심의 경우 국가가 수용시설을 만들어 일시적이라도 거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제시카법이 추가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있을지도 쟁점이다. 김 연구실장은 “출소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려면 전자발찌를 끊고도 가능하다”며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면 오히려 증오감정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금 법안 내용은 결국 우리 동네에 오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며 “성범죄자들도 사회에 적응해야 재범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를 막겠다는 의지”라며 “피해자 중심적인 제도를 도입하려면 실천을 위한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기존 전자발찌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접적인 거주 제한보다는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감시 인력, 예산을 늘리고 접근금지 준수사항을 강화하는 등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시카법= 2005년 아동 성폭행범에 의해 목숨을 잃은 9세 소녀 제시카 런스포드(Jessica Lunsford)의 이름을 따서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제정한 법. 12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에게 최소 25년의 징역을 살게 하고, 출소 후 평생 전자발찌를 부착하게 함. 또 성범죄자가 학교·공원 주변 약 30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 현재 미국 30개 이상 주에서 시행 중.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