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뇌전증, 쉿!” 미끼 던지고… 법 악용해 갈취 ‘압박’

입력 2023-01-06 00:03

허위진단을 유도해 병역면탈을 시도한 브로커 구모(47·구속 기소)씨와 김모(37)씨는 의뢰인이 불법행위에 겁을 먹고 계약을 해지하려 하면 법원에 ‘지급명령’ 신청까지 하며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이들의 상담 내용이 병역면탈 내용인 것까지 들여다보지 않고, 계약 성립 여부만 따져 “돈을 지급하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는 2021년 포털사이트에 입대와 관련한 검색을 하다가 ‘국방행정사’라는 이름의 광고 글을 보고 브로커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군 출신이라 어떻게 하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을 ‘예비역 소령’이라고 홍보했다.

A씨가 사는 지역까지 출장 상담을 온 김씨는 “뇌전증이라고 들어봤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만약 뇌전증으로 진단받고 2년간 치료받으면 군 면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 2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A씨는 김씨가 준비해 온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A씨는 병원에 가서 뇌전증 검사를 예약하고 나니 허위임이 들통날까 봐 불안감이 몰려왔다고 한다. 특히 병역면탈은 범죄라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상담만 받고 실제 뇌전증 허위진단 시도는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계약은 체결된 것이라며 상담수수료 2000만원을 요구했다. 법원에는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지급명령은 정식 소송절차보다 간편하게 채권자가 금전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절차다. 법원은 서류 심리만으로 지급명령 발령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법원은 김씨 신청을 받아들였다.

A씨가 법원에 이의를 신청하자 뒤늦게 법원은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보고, 지급 의무가 없다고 봤다.

다른 브로커 구씨도 의뢰인들을 상대로 법원에 수차례 지급명령 신청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병역비리를 실토한 프로배구 OK금융그룹 구단 소속 조재성도 지난달 입장문을 통해 “계약서를 쓴 뒤 무서운 생각이 들어 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이미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안 하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압박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법무법인 봄날의 박주영 변호사는 “계약 내용 자체가 병역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다”며 “그런데도 브로커들은 의뢰인들을 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법원의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판 성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