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겉 다르고 속 다른’ 대기업 공익법인에 대한 감독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이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을 준수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에 나서고, 대기업 계열사와 내부거래가 유독 많은 공익집단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한다.
5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만간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이 공정거래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국내 계열회사에 대한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이 공익법인을 이용해 편법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잘못된 관행이 장기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2018년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공익재단을 상대로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공익법인이 가진 주식이 주로 총수 2세 출자회사 등 지배력과 관련된 회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기업 공익법인이 공익 목적을 위해 벌어들였거나 지출한 비중은 일반 공익법인 절반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공익을 강조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에 이용된 공익재단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공정위는 공익법인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 내역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를 개선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공정위가 공개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공익법인 내부거래 현황 자료에서도 수상한 지점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해 지정된 76곳 공시대상 대기업집단 중 동일인(총수)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공익법인이 있는 곳은 67곳(88.2%)에 달한다.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공익법인의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66.7%로, 계열사 주식을 미보유한 공익법인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비율(35.7%)보다 훨씬 높았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이 공익법인을 사실상 계열사처럼 활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익법인은 ‘사회 공헌’이라는 목적 아래서 운영돼야 하는데, 매출·매입 발생 등 일반 사업자처럼 활동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공익법인들은 주식·부동산·상품·용역 등 공익사업과 무관한 내부 거래를 통해 내부거래로 상당한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삼성의 경우 상품용역으로 매출을 올린 공익법인이 총 10곳이었는데, 이중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개 소속회사에 대해 건물 임대·구내식당 서비스 제공으로 모두 159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은 “내부거래 내역 공시 의무화 등 ‘간접 압력’을 일단 높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계열회사 지분을 보유한 공익법인 수가 많은 롯데·삼성·포스코 등 기업집단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의결권 제한 등 현행 제도가 공익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입장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