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공허한 눈빛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기막혀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죠.”
지난해 3월부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을 하는 김에녹 선교사는 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새해를 맞았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다.
김 선교사는 2001년 국제선교단체 예수전도단(YWAM)에서 파송돼 아프리카 중국 미국에서 다양한 사역을 했고, 2015년엔 중동 국가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 개척 및 난민 사역을 했다.
지난해 3월 중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와 프셰미실에 있는 난민 캠프를 방문한 이후 정기적으로 이곳에 머무르며 난민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처음 방문한 난민 캠프의 분위기는 전쟁에 대한 극도의 긴장감으로 무거웠다. 하지만 절망스러워하는 난민들의 이면엔 ‘어린양’과 같은 반전의 모습도 있었다. 김 선교사는 “난민들은 날카롭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순전한 어린양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난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난민을 정성껏 돌보는 폴란드 정부의 시스템에 감탄했다. 폴란드 정부는 대부분 사회복지기관 등을 변경해 난민 캠프 등으로 활용했다. 캠프는 정부와 공무원, 폴란드 시민과 전 세계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됐다.
폴란드 정부는 여성 노약자 등의 난민을 국경에서부터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이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과 자원 등을 쏟아부었다. 경찰 군인 소방관 등 공무원은 주말에도 난민의 이동과 안전을 위해 일했다. 시민들은 자택의 남는 방을 난민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다.
폴란드 정부와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돕는 이유는 폴란드 역시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39년 9월 나치독일의 폴란드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39~45년에는 나치독일과 소련의 점령 통치를 받았다. 김 선교사는 “바르샤바의 영문 이름은 ‘워소(Warsaw)’다. ‘전쟁을 보았다’라는 뜻”이라며 “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 도시의 80~90%가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김 선교사는 난민 캠프에서 차량 지원을 비롯해 밤낮으로 청소, 설거지, 이불 정리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추운 날씨로 어려움을 겪는 난민들에게 로션 과자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그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눈물로 감사를 표현한 분들도 있었다.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 선교사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난민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큰 환난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