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행정사가 병역기피 조장” 신고했지만… 관련기관은 방치

입력 2023-01-05 04:07
2019년 1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병역기피 조장 행정사’를 신고하는 민원이 접수됐지만 국방부는 한 달 뒤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답변했다. 국민신문고 캡처

‘뇌전증 병역 면탈’ 브로커 구모(수감 중)씨가 본격 활동을 시작했던 2019년 초 이미 병무청과 국방부, 경찰 등에 그에 대한 비리 의심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원 접수 기관들은 단순 계도 조치만 내리는 데 그쳤고, 이후 구씨는 본격적으로 병역 면탈 상담에 나섰다.

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9년 1월 국방부에 “병역 기피를 조장·권유하는 행정사가 있어 고발한다”는 내용으로 구씨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다. 해당 민원글에는 “구씨가 병역 기피 방법을 알려줬다”는 내용도 담겼다. 구씨는 당시 “4급이나 5급(면제)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겠다”는 식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적시된 내용만으로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정상적인 행정사 업무 범위 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당시 답변이 충실하지 못했던 점은 유감”이라며 “병역 면탈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아 조사가 곤란했었다”고 해명했다.

구씨에 대한 민원은 병무청에도 두 차례 접수됐다. 2019년 3월 병무청에 “네이버 지식인 등에 병역 기피를 부추기는 의도가 담긴 글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민원인은 첫 신고 일주일 뒤 재차 “(구씨 행위를) 전수조사해 실제로 병역 기피를 한 것이 있으면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 구씨의 행정사등록증 사진까지 첨부했다.

그러나 병무청 역시 계도 조치로 민원을 종결했다. 병무청은 “문제가 된 게시물을 삭제 요청하고 계도하겠다”고 회신했다. 병역 비리의 단초가 보였지만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은 (브로커가 아닌) 병역의무자 본인이 병역 의무를 면탈하거나 기피하는 경우에 수사에 착수한다”며 “당시 제보만으로 수사에 들어가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4월에는 경찰청에도 신고가 들어갔다. 전주덕진경찰서는 병역법 교사 혐의로 구씨 사건을 배당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안 구씨가 해당 민원인의 신원을 알아내 접촉을 시도하자, 부담을 느낀 민원인이 사건 접수를 취하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병무청에서도 ‘검증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회신을 받아 사건을 종결했다”고 말했다.

관련 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구씨는 ‘병역의 신’을 자칭하며 1건당 1000만원 넘게 수수료를 받고 음지에서 병역 면탈을 도왔다. 그는 결국 최초 민원 접수 3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21일 병역 면탈 조장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현재 프로스포츠 선수를 비롯해 연예인, 법조인 자녀 등 70여명을 수사 선상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구씨의 사무소 지역 지사장들이 병역을 회피하려는 징병 대상자를 모집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병역 비리를 실토한 프로배구 OK금융그룹 구단 소속 조재성을 이날 불러 조사했다.

정신영 김판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