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정유가 공개… 업계 “영업비밀 침해” 반발

입력 2023-01-05 00:03
지난해 하반기에 적용됐던 유류세 인하율(37%)이 1월 1일부터 25% 낮춰지며 휘발유 값이 약 99.6원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랑 1526.9원과 비교해 1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선 휘발유 가격을 1624원에 판매하며 약 97원 가량 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정부가 가격 안정을 위해 지역·판매대상별 정유사 판매가격(도매가)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유류세를 내려도 소매가격을 낮추기 힘든 주유소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유사들은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반발한다. 개정안은 지난 연말 주무부처의 규제심사위원회를 통과했고, 이달 중에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심사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유 4사의 휘발유·등유·경유 정보공개와 보고 범위를 광역시·도와 대리점·일반 주유소로 확대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4일 밝혔다. 현재 공개 대상은 각 정유사의 전국 평균 판매가격이다. 보고 범위는 전국 판매량·매출액·대출단가다.

정부는 유류세를 내려도 주유소에서 기름값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공급가격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시행령에 손을 대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유소에서 유류세 인하분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하려면 도매가를 알아야 하는데, 현재는 도매가를 모른 채 정유사와 ‘깜깜이 거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유사와 주유소는 사후정산제로 거래한다. 주유소는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에서 기름을 받을 때 입금가를 준다. 한 달 뒤 정유사에서 주유소에 확정가를 알려주고 정산하는 방식이다. 매일 가격이 변하는 국제유가의 특성 때문에 자율적으로 정착된 제도라고 한다.


정유업계는 ‘영업비밀 침해’ ‘시장질서 교란’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제품 가격의 ‘상향 동조화’도 우려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와 같은 생필품인 라면을 보자. 라면 공급업체도 동네슈퍼, 대형 마트, 백화점 등 특성에 따라 각기 가격이 다르다. 하지만 이걸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정유사에 유통단계별 가격을 모두 공개하라는 건 영업비밀 침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시장질서 왜곡을 우려한다. 30년 넘게 주유소를 경영한다는 서울의 한 주유소 운영자 K씨는 “공급가격을 공개하면 정유소 사이에 ‘간판(pole)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유사들은 그 마케팅 비용을 결국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대개 주유소들이 ℓ당 100원도 안 되는 마진으로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고 인건비를 충당한다. 가격을 공개하면 결국 정유사 또는 주유소끼리 출혈 경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경쟁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공급가격 공개는 근시안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오피넷에서 미국 유럽연합 일본 같은 선진국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소비자가격을 공개하고 있다. 고유가는 세계적 수급 불균형에 따른 현상이다. 어떤 나라도 정유업계 가격정책을 전면 공개해 이를 해결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재계에서는 ‘100% 개방 시장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유사 공급가격 세부공개는 지난 2011년 이명박정부 때 지식경제부에서 추진했지만, 영업기밀 침해 등을 이유로 무산됐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