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허위 진단으로 병역면탈을 도와 구속 기소된 브로커가 “국방부와 직접 선이 닿는다”며 군 관련 시민단체에 접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는 군과 연결돼 있는 것처럼 가짜 국방부 이메일 계정도 제시했다. 검찰은 이 브로커가 단체를 속여 얻은 직함을 병역면탈 알선에 활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브로커 구모씨는 2021년 3월 자신을 국군 행정사라고 소개하면서 국군포로 관련 한 단체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내가 국방부와 직접 관계가 있어 국군포로 자녀들에게 (그해 6월까지) 화랑무공훈장을 받도록 할 수 있다. 대신 단체 직함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단체는 ‘부대표이사’ 직함을 줬다. 구씨는 훈장 대상자 목록과 유족 주소, 연락처, 이름 등 신상정보까지 받아갔다. 훈장 수여가 이뤄지지 않아 단체 측이 항의하며 진행 상황을 묻자 구씨는 같은 해 4월 15일 국방부와 주고받은 내용이라며 ‘화랑무공훈장 신청 명부’라는 제목의 이메일 내역을 제시했다고 한다. 구씨가 발송한 메일이 국방부 소속 A장교에게 수신된 것으로 나온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메일 주소는 A장교 계정이 아니라 검찰이 구씨와 공범으로 보는 다른 병역 브로커 김모씨의 계정이었다. A장교 역시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구씨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 없고 그런 자료를 받은 적도 없다”며 황당해 했다.
구씨는 나흘 뒤인 4월 19일 국방부 산하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과도 접촉했다면서 이메일 캡처 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 속 수신자 이메일 주소 계정이 ‘@army.kr’이었던 것과 달리 국방부 조사단 공식 이메일 주소는 ‘@army.mil.kr’이었다. 단체 관계자는 “구씨가 한 단어를 교묘하게 뺀 가짜 계정으로 메일을 주고받은 척했다”고 주장했다.
구씨는 이 단체 부대표 직함을 자신의 블로그에도 소개했다. 또 이 활동을 근거로 2021년 한 소비자단체가 주관한 우수 전문인 시상식에서 ‘올해의 행정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국방부와 병무청, 국가보훈처 등 유관기관과 협업했다고도 주장했는데, 검찰은 구씨가 병역 관련 상담을 하러 온 의뢰인들에게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이 같은 직함을 내세웠다고 본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으로 구성된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은 브로커들이 가짜 뇌전증을 진단받는 과정에 병원 관계자가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