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1935년 유럽 곳곳에 순수 아리안 인종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에 따라 타인종을 억제하고 건강한 게르만족의 인구를 늘리기로 했다. 바로 ‘레벤스보른(생명의 샘) 프로젝트’다. 두 가지로 진행됐다. 우선 엄선된 독일인들이 독일 혹은 점령지 내 아리안 혈통 여성들과 강제 결혼하거나 혼외 관계로 아이를 낳도록 했다. 또 하나는 점령지에서 ‘금발의 푸른 눈’과 같이 우수 인종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납치해 독일로 보내는 일이다. 스웨덴의 전설적 그룹 아바의 보컬 애니 프리드 린스태드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희생자의 딸이었다. 독일의 물리치료사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생후 9개월 때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유고슬라비아에서 납치돼 독일 가정에 입양됐다. 훗날 자신의 뿌리를 좇는 과정을 담은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란 책을 썼다.
전쟁 혹은 적대 세력과의 분쟁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행동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행과 함께 미성년 아동 납치가 꼽힌다. 상대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짓이기 때문이다. 제네바협약은 점령 국가 아동의 신분상 지위 변경을 금지하고 있지만 범죄 집단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좌파 잔재를 없애려 반체제 인사 자녀 500여명을 납치, 군인·경찰 가족에 입양시켰다. 스페인 프랑코 독재정권에서도 반체제 인사의 신생아 수만명이 강제로 친정권 가족에 입양됐다.
21세기 세계 질서 지형을 바꾸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더러운 짓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전쟁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미성년자 1만3613명을 데려갔다. 이 중 돌아온 아이는 122명뿐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한 어머니가 11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군이 납치한 어린 딸을 데려왔다. 어떤 독재 국가나 정권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막지 못한다. 전쟁이 빨리 끝나 행방불명된 아이들과 부모가 기쁨의 상봉을 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