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내 삶은 전체가 신앙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성도가 스무 명 남짓한 시골교회로 부임한 아버지는 새벽기도 후 전도와 심방을 하고 밤늦도록 눈물로 기도하셨다. 2년 쯤 지나 교회가 부흥되며 병든 사람이 고침 받고 귀신이 떠나는 역사가 일어나자 성도가 몰려왔다.
교회 증축을 위해 모든 식구가 방 한 칸에서 생활하고 방 한 칸은 누에를 길렀다. 어머니께 꽁치통조림을 먹고 싶다고 하자 건축헌금을 하고 돈이 남으면 사주시겠다고 했다. 건축헌금도 하고 통조림도 먹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누에에게 줄 뽕잎을 열심히 땄다. 정성으로 키워 작정한 건축헌금을 하고 나니 딱 꽁치통조림 한 개 값 350원이 남아 통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중고등부 수련회 때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가고 싶던 수학여행도 포기하고 여행비를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그렇게 하나님께선 늘 나와 함께하셨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서서히 믿음이 흔들리며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사랑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의식에 빠져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해도 말씀은 율법이 되어 나를 눌렀고 죄를 용서받았다는 확신도 서지 않았다. 예수님께 생명을 드리겠다는 고백도 한 순간에 사라졌다. 행복을 꿈꾸던 결혼은 시댁이란 벽에 부딪쳤다. 시아버지께 시어머니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갓 시집 온 사람이 시댁 가풍을 무시한다며 크게 노했다. 결국 이혼까지 거론되었지만 절대 타협하지 않고 죄인 같은 나날을 보냈다. 사리분별이 분명한 형님이 예수를 믿는 자네가 참으라는 조언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의 기쁨도 사라지고 억울한 마음만 들었다. 그날 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끼어 있는 내 믿음의 실상에 평생 쌓아온 신앙이 뿌리째 흔들렸다.
그동안 나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 믿고 있는 자가 아니었다. 문득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 떠올라 그때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4복음서에 집중했다.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허황된 거짓말쟁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계속 집중하던 어느 날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구약의 말씀과 ‘부활로 내가 그인 줄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딱 연결됐다.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모든 문제는 끝이고, 부활이야말로 확실한 믿음의 증거라는 사실에 흥분이 됐다.
그러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으며 증인이 500여 명이나 되고 그들 중 대다수가 살아있다는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에 모든 생각이 딱 멈추었다. ‘대다수가 살아있다고?’ 살아있는 수백 명의 증인이 내 앞에 보이는 순간 바로 ‘아! 부활하셨구나! 예수님이 정말 살아나셨구나!’는 탄성이 나왔다. 그때 예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선명해지며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가 얼마나 악한 죄인지 알게 되니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십자가에서 그토록 절망했던 죄의 문제가 부활로 단번에 끝난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예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 되고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삶을 목격하니 세상적 가치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강이 임하며 한순간에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 곧장 캠퍼스에 들어가 청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청년들이 예수님께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때마침 약국을 운영하던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부어주셔서 더욱 기쁘게 주님을 위해 사용하게 해 주셨다.
무조건 교회를 배척하며 ‘사람이 죽으면 끝이지,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냐?’며 강력히 버티던 시아버지께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해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였을 때 ‘내가 이제 예수님을 믿으니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말라.’며 당신이 가시면 교회식대로 장례를 치르라는, 상상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나만 보면 ‘내 며느리’하며 환하게 웃으시다가 편안히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20대에 몸에서 콜라겐이 합성되지 않는 특이체질로 40세를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던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정말 놀라운 주님의 은혜다. 지난해 대장 천공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여러 차례 죽음 앞에 설 때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중보기도로 오늘도 살아있음이 감사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고, 나에게 없는 것 또한 주님이 주인이시다.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원하신다면 나에게 건강을 주시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심에도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으니 마음에 요동이 없다. 나는 마취주사와 진통제,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통증을 넘겼지만 우리 주님은 인격이 몰수당한 채 온갖 고통을 다 당하시고 인도의 들개만도 못한 인생을 사셨다는 어느 인도 선교사님 말씀에 마음이 저민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내가 무엇이 아쉽다 할 수 있을까…주님, 사랑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향자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