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권 신뢰 회복 없인 미래 없어… 과감한 충격요법 절실”

입력 2023-01-02 04:07

상품 개발도 수익률 향상도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보험사들이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것은 소비자 신뢰 회복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험사들이 가입자가 어려울 때 돕기보다는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아 ‘비가 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한 보험업계의 미래는 어둡다는 지적이다.

김재현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부 교수는 1일 “은행, 증권 등 타 금융업권과 비교했을 때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크게 낮게 나타난다”며 “30여개의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봐도 국내 보험산업에 대한 신뢰 수준은 최하위권”이라고 밝혔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민원 동향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기준 금융권 전체 민원 10건 중 6건(59.7%)은 보험 관련이었다. 이는 은행(11.4%) 금융투자(12.7%) 등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특히 보험모집(생명보험), 보험금 산정 및 지급(손해보험) 등 보험의 핵심적인 영역에서 민원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김 교수는 이런 낮은 소비자 신뢰를 개선하기 위해 외부충격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보험업계 자체적으로 소비자 보호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보험사 평가는 바닥을 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규제와 감독 등 ‘외부 충격’이 있어야만 산업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보험사로만 구성돼 변화에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는 보험업계에 새로운 시장참여자를 적극적으로 유입시켜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규제·감독을 강화하고 시장참여자 허들을 낮춰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빅테크 등 보험판매플랫폼이 이 같은 긍정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손해사정사 제도를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개편하고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보험연구원의 변혜원 연구위원은 “손해사정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자격, 보수교육 확대 등을 통해 손해사정사가 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방적으로 가입자에게 손해사정사를 배정하기보다는 손해사정사 리스트를 제공하고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해사정 과정에서 보험금 지급이 지연될 경우 이에 대한 이자를 함께 지급하는 등 책임도 외면해선 안 된다.

중장기적으로 실손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의료저축계좌’ 제도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상품은 고령기 실손보험료 일부를 젊었을 때 미리 납부해 고령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적립금 형태로 운영된다. 젊었을 때는 보험료만 내고 병원에 가지 않다가 고령기에 갑자기 병원 방문 빈도가 높아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의료수가에 대한 공정한 통제도 필수적이다. 현재 실손보험 누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의료수가 대외비(비밀) 정책이 지목된다. 의료수가 논란은 특히 도수치료 등 적정 가격을 특정하기 어려운 시술에서 많이 발생한다. 미국 프랑스 호주 등 선진국은 보험회사와 의료기관 양쪽에 의료수가 협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적정 가격을 도출할 수 있게 실손보험을 운영한다. 비슷한 취지로 우리나라에도 제4세대 실손보험이 도입됐지만 현재는 비급여에 대한 보험료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