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 1분기(1~3월)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한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 회의가 동시에 열렸다. 2001년 출범한 전기위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기요금 체계 심의 권한을 갖는 최종 결정 기구다. 전기·전력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전기위 위원들은 회의에서 전기요금 인상폭을 중점 논의했다.
그 결과 전기위 위원들은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을 제시한 정부안이 누적 적자 30조원에 달하는 한전 사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물가불안을 염두에 둔 기재부의 뜻대로 전기요금 인상폭은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기요금은 한전이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 인상·인하를 신청하면 전기위가 이를 심의하도록 돼 있다. 법적으로 최종 결정 기구는 전기위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고물가 상황에서 서민 가계를 걱정하는 재정당국의 속내도 이해는 간다. 다만 한전의 부실화가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대정전) 같은 재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내년에는 22대 총선이 예정돼 있어 지금처럼 정부의 입김이 셀 경우 전기요금이 여론전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부와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을 각각 kWh당 51.6원, 60.47원으로 추산했다. 그만큼 한전의 적자 상황이 심각하다. 예전처럼 정치 논리나 국민 여론이 전기요금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한전 적자 사태는 해결될 수 없다.
한전 적자를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기재부의 역할을 줄이고, 전기위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 전력산업 전문가로 구성된 전기위가 원가주의에 따라 전기요금 현실화에 나설 때 요금 인상의 정당성이 더 커지고, 한전 사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세종=박세환 경제부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