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부근에서 발생한 불이 북의왕IC 방음터널에 옮겨붙으면서 사고 현장에서는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시커먼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터널은 삽시간에 불을 뿜는 용광로로 변했다. 터널을 지나던 운전자들은 차를 버리고 터널 밖을 향해 필사의 탈출을 했다. 하지만 5명은 미처 차에서 내리지 못하면서 참변을 당했다.
29일 오후 1시49분쯤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화재를 본 한 목격자는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 터널 안에서는 폭탄이 터지는 듯한 ‘펑’ 하는 소리가 연이어 났고, 화마와 함께 먹색 연기가 순식간에 터널 안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화재 사실을 파악한 운전자들은 서둘러 차를 후진해 터널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뒤따라오던 터널 밖 차량과 뒤엉키면서 대피가 쉽지 않았다.
혼란과 공포 속에 소방차가 도착해 터널 내 진입을 시도했다. 소방관들의 안내로 차량들이 벽 쪽으로 이동해 공간을 만들었고, 소방차가 현장에 접근하면서 화재 진압이 시작됐다. 불길 근처에 있던 많은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황급히 터널을 빠져나갔다. 한 목격자는 “터널에 진입한 후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아니라 100m 달리기 선수가 달려오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한꺼번에 덮쳐 왔다”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이 당황해 차를 버리고 뛰었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터널 천장에선 불이 붙은 패널들이 불쏘시개가 돼 아래로 쏟아졌다고 한다. 경기도 안양의 한림대성심병원에서 만난 부상자 조남석(58)씨는 “차에 불이 붙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열기를 등지고 뛰어나오는데 몸이 익는 것 같았다”며 “연기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터널 밖) 불빛만 보고 달렸다”고 전했다.
불 붙은 패널들이 차량으로 옮겨붙으며 불은 더 크게 번졌다. 패널이 열기에 터지며 ‘펑펑’ 폭발음도 계속됐다. 소방 당국은 반대편 차량 진입을 막고, 터널 내 중앙분리대를 열어 사고 차량이 반대편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가까스로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갓길에 일렬로 앉아 연신 콜록거렸고,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구조대를 기다렸다. 사망자들은 차량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연기를 들이마셔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관계자는 “차량 4대 안에서 사망자 5명이 발견됐다”며 “모두 차 안에서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터널 구간 내에서 44대 차량이 고립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발생 1시간여 만인 오후 3시쯤 큰 불길은 잡혔고, 오후 5시까지 터널 내 인명 피해 3차 수색이 진행됐다. 불길이 잡히면서 사망자 수습도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이뤄졌다.
과천=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