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소형 보험 판매 대리점(GA) 대표 A씨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신입으로 뽑아 하나부터 일을 직접 가르친 설계사 직원 수십명이 “대형 보험사 등이 운영하는 GA로 가겠다”며 잇따라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A씨는 “보너스를 주겠다”며 붙잡았지만 대형 GA에서 내건 막대한 스카우트 수당 이상을 제시할 수 없었다. A씨는 “대형 GA가 도를 넘는 설계사 영입 경쟁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보험업계 트렌드 중 하나는 GA 자회사를 세워 판매 채널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른바 ‘제판(보험 상품 제조-판매) 분리’다. GA 자회사를 세우면 타사 상품을 함께 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천~수만명의 설계사 인력을 직접 고용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보험사가 한꺼번에 제판 분리에 나서면서 설계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GA 자회사 몸집 불리기에 가장 적극적인 보험사는 한화생명이다. GA 자회사 두 곳(한화생명금융서비스·한화라이프랩)을 운영하던 한화생명은 지난 11월 업계 6위 피플라이프를 인수하며 설계사 수를 2만4550명(지난 6월 말 기준)까지 확대했다. 한화생명은 산하 GA 소속 설계사 수를 3만명까지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추가 인수할 곳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GA 중 최대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6개월 동안에만 설계사 수를 830명(4.7%) 늘렸다.
다른 대형 보험사도 제판 분리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미래에셋생명이, 4월 현대해상이 각각 GA 자회사를 세웠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11월 70억원을 투자해 GA업계 5위 KGA에셋 주식 14.7%를 취득하기도 했다.
보험업계는 설계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보험 영업력으로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GA 소속 설계사는 대부분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급여 대부분이 보험 판매 수당으로 이뤄진다. GA 아래에 설계사 수만명을 두더라도 인건비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설계사 영입 경쟁이 보험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설계사를 영입할 때 제공하는 억 단위의 스카우트 수당은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또 설계사가 소속 GA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거나 보험 가입자가 제대로 된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GA가 무리한 설계사 영입 경쟁을 자제하는 한편 판매 수수료율을 세세히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전 한국보험학회장)는 “무리한 설계사 영입 경쟁은 제 살을 깎아 먹는 행위”라며 “증권업계는 펀드를 판매할 때 상품별로 판매 보수와 선·후취 수수료율까지 공개하는데 보험업계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공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