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서해 피격 첩보 5600건 삭제… 이대준씨 실족에 무게”

입력 2022-12-30 04:05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장관. 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월북 몰이’ 사건 당시 첩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9일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군에 피살된 이씨에 대해 지난 정부는 월북자라고 결론 냈지만, 검찰은 실족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박 전 원장과 노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국정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서 전 장관을 직권남용·공용전자기록 등 손상·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이씨 사망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국정원이나 국방부 직원들에게 피격과 시신 소각 관련 첩보·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씨가 피살된 직후 국방부와 예하 부대에서 5600여건, 국정원에서 50여건의 첩보나 보고서가 삭제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같은 대량의 첩보 삭제에 대해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이씨가 자진 월북이 아닌 실족으로 북한 해역으로 표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수사팀은 이씨가 바다에 빠진 시점에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씨가 발견 당시 착용하고 있던 구명조끼는 그가 타고 있던 무궁화10호의 물품이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구명조끼를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찰은 그가 가족과 유대감이 깊었으며, 북한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보였던 생존 의지도 실족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으로 봤다.

사건 당시 해양경찰이 이씨의 표류예측을 의뢰한 기관 4곳 중 2곳은 ‘인위적 노력’ 없이도 북한 해역으로 표류할 수 있다는 사례가 담긴 분석 결과를 내놨던 것으로도 조사됐다. 하지만 해경은 당시 중간수사 브리핑에서 “인위적 노력 없이 실제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밝혔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가 개인에게 월북자라는 결론을 내리려면 사법절차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 명확한 근거를 확보해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북 몰이를 총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첩보 삭제 혐의는 계속 수사 중이다. 검찰은 첩보 삭제 지시 배경에 이씨 피살이 국민적 비난이나 남북관계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서 전 실장 등이 첩보 삭제를 지시한 날에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 연설도 있었다. 이런 상황 역시 사건 은폐의 동기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조민아 신지호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