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수지 악플 ‘국민호텔녀’는 모욕죄”… 혐오에 경종

입력 2022-12-29 04:05

가수 겸 배우 수지(본명 배수지·사진)에게 ‘국민호텔녀’라는 악성 댓글을 단 행위가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생활·성별 혐오와 관련해선 표현의 자유도 그 범위가 제한된다는 점을 대법원은 분명히 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수지와 관련한 포털사이트 기사에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수지를 왜 OOO한테 붙임? 제왑(JYP, 당시 수지 소속사) 언플징하네’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국민호텔녀, 폭망, 퇴물 등 표현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보기 충분하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무죄로 뒤집혔다.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2심 재판부는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비판, 풍자, 패러디 등에는 제3자에 대한 모욕적 내용이 포함될 수 있고 모욕죄와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모호한 기준으로 형사처벌이란 수단을 사용할 경우 국민에게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의 표현을 공적 사안과 사적 영역으로 나눠 판단했다. 연예인이라도 공적 활동에 대한 비판과 사생활에 대한 모욕은 표현의 자유 범위가 달라야 한다는 게 재판부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새 법리를 내놨다. 이 기준에 따라 모욕에 해당한다고 판단된 표현은 ‘국민호텔녀’였다. 대법원은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멸적 표현”이라며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국민호텔녀라는 용어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들춰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혐오 표현의 성격을 띤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동안 법원 판례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지만, 사생활·혐오 표현과 결부된 경우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 역시 명확해지는 추세다. 헌법재판소도 2020년 “한국에는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