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남자라서 대접받고, 한글을 혼자 뗀 언니는 똑 소리 나고, 동생은 큰 눈에 뛰어난 미모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중간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는, 미련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늘 눌려 살았다. 6학년 때 주일학교를 마치고 쌀가게에 나갔는데 마침 아버지가 전화를 받고 차에 쌀을 싣고 배달을 나갔다. 혼자 가게를 지키며 TV를 보는데 무섭게 생긴 사람이 들어와 아빠 친구로 이미 얘기가 다 되었다며 쌀 6가마를 싣고 급히 떠났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뛰어 나갔지만 트럭은 이미 사라졌다. 급히 돌아온 아버지가 배달 전화도 사기였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조사를 온 경찰에게 인상착의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고 심한 야단을 맞고 몇 시간을 엉엉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 후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끝없이 양보하고 힘들고 싫은 일도 도맡아 했다. 자연히 가족들은 힘든 일은 나만 시켰고, 그 사이에 마음엔 속상함과 분이 가득 쌓여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오후에 검찰청 업무를 마치고 청내 은행에 갔는데 업무가 마감되었다고 했다. “뭐야? 검찰청 직원이 아니면 은행 일도 안 되는 거야?” 너무 화가 나서 은행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얼마 후 은행직원이 글을 내려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딱 잘라 거절했더니 담당자가 직접 찾아와 백배 사과를 했다. 무시당하면 반드시 응징하는 것이 구겨진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다.
그 후 서른넷에 회사원인 남편과 결혼해 함께 교회도 다니며 나름 만족스런 삶을 살았지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분을 내며 약한 아이들을 몰아 붙였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실수에도 소리치며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분노를 폭발했다. 매사에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면서도 하나님께 사람들과 아이의 마음을 변화시켜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계속했다.
힘든 마음으로 보내던 어느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요한복음 말씀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그렇다면 이분이 바로 죽음을 이긴 하나님이시네.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부활을 역사에 박아 놓으셨네!’ 부활이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증거임이 한 순간에 알아졌다.
예수님을 믿는데 내 삶은 왜 이럴까 고민이 많았다.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부활이 실제가 되지 않은 내 신앙은 가짜 신앙이었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은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분을 내는 것은 남들에게 무시당하기 때문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불공정한 세상 때문이라며 항상 원망과 분을 품고 살았다. 그동안 교회생활을 통해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음 등 모든 것의 근본적 이유는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내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셨고, 그 사랑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주인 되신 예수님의 사랑 하나면 충분했다. 분 낼 일도 없고 복수의 칼을 갈 이유도 없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이 영혼들을 향해 흘러 나가기 시작했다. 다 큰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바지에 오줌을 누어도 괜찮다고 다독거려 주는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도 어리둥절했다. 옷을 입고 거울을 보던 내게 큰 아이가 “엄마, 하나님의 걸작품은 다 예쁜 거잖아. 아무거나 입어.”하는 놀라운 말도 들었다.
어느 날 충성된 영혼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세 자녀를 생각나게 해주셨다. 아이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는 것이 내게 주신 사명임을 알게 되며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재미있게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9년 5월 그날도 새벽기도를 하고 7시쯤 안방으로 갔는데 침대에서 자고 있던 7살 셋째가 아래, 위로 모든 것을 쏟아내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급히 119를 불러 병원으로 향하며 교회공동체에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아이 손을 잡고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할 때도 계속 기도를 하는데 허공을 향해 부르짖는 것만 같았다. 순간 ‘부활’ 두 글자가 딱 떠오르며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확신에 마음에 평강이 부어졌다. 깨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만져주며 부어주시는 사랑에 감사해서 울고 아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또 울었다. 아이는 몇 시간 후 서서히 깨어나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내 눈에서는 폭포수 같은 감사의 눈물이 나왔다.
요즘 첫째는 전도하려고 예수님 사진으로 된 그립 톡을 핸드폰에 붙이고 다니고, 죽을 고비를 겪은 둘째는 교회 초등부 친구들과 매일 저녁 줌으로 예배를 드리며 사명자의 길을 가고 있다. 매일 아침 세 아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출발한다. 세상이 삶을 흔든다 해도 부활의 증거는 변하지 않으니까 세 아이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긴다. 내가 물려 줄 것은 오직 복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현숙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