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대에 막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손 못대

입력 2022-12-27 04:06

실손보험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손해보험업계가 강조하는 보험 사기 근절보다 후진적인 청구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대학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에서 입·통원 치료를 받은 뒤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가입자가 진단서와 진료 기록부, 영수증 등 증빙 서류를 일일이 떼 팩스 등으로 보험사에 직접 보내야 한다. 병원과 중계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보험사 간 전산 연결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전산으로 연결되면 심평원에 전국 병원의 비급여 진료비 데이터가 쌓인다. 어떤 병원이 도수 치료비를 과도하게 비싸게 청구하는지, 어떤 병원에서 실손보험금을 쓸어 가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 경우 비급여 항목에서 과잉 진료하는 병원을 특정할 수 있게 돼 금융당국의 보험 사기 조사가 쉬워진다.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는 윤석열 대통령 선거 공약 중 하나였지만 취임 7개월을 맞은 현재까지도 안갯속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의료계의 반대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서 세미나를 열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석하는 8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료계 반대로 무산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료계 인사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시 심평원을 배제한다면 동의하겠다”고 조건부 찬성했지만 곧바로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에까지 찬성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결국 지난달 15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핵심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의료계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동의하지 않는 한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손보업계도 이런 의료계에 강력하게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학계 전문가는 “손보업계가 중소형 병원 밥그릇을 지키려는 의료계와 파워 게임에서 밀려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 부담을 가입자에게 떠넘기는 꼴”이라며 “손해율을 끌어내리려면 중소형 병원의 과잉 진료를 막아야 하는데 그 첫걸음이 청구 절차 간소화”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