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깜깜이 회계’라고 비판받는 노동조합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거대 노조를 대상으로 재정 관리 실태점검을 벌이고, 회계 감사 결과를 공표하도록 법 개정도 추진한다.
고용노동부는 26일 이런 내용의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동조합 회계 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며 노조 투명성 강화를 강조했다. 지난 21일 노조의 투명한 회계를 강조한 지 5일 만에 다시 관련 지시를 내놓은 것이다.
고용부는 우선 노조가 현행법에 따라 재정 투명성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내년 1월 말까지 자율점검 기간을 두기로 했다. 점검 대상은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대형 노조와 연합단체 253곳이다. 상급단체별로 구분하면 한국노총이 136곳, 민주노총 65곳으로 80% 정도를 차지한다.
노동조합법 제 14조는 조합원 명부, 규약, 회의록, 재정 관련 장부와 서류 등을 비치하도록 하고 이중 회의록과 재정 관련 자료는 3년간 보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고용부는 해당 서류 비치·보존 점검결과를 보고하지 않거나, 일부 자료를 누락한 경우 과태료 처분을 할 계획이다. 노조의 회계를 담당하는 회계감사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 개정도 추진한다. 현행법에는 회계감사원을 통한 회계감사가 의무화되어 있을 뿐, 회계감사원을 선출하는 방법과 자격에 대해서는 규정돼 있지 않다. 고용부는 ‘셀프 감사’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자격 요건과 절차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노조의 재정 상황 공표 방법과 시기를 명시, 조합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의 경우 회계감사 결과를 공표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정부가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노조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방치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법령이 미흡한 부분은 시행령이나 모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런 정부 움직임이 노조의 자주권을 해쳐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반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미국의 ‘랜드럼 그리핀법’은 (노조의 재정 관련 내용을) 행정관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며 “ILO도 정기적으로 법령에 의해서 보고하도록 한 절차는 존중하면서 자주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