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사랑상품권과 도로·철도 등 개발사업 예산은 대거 증액됐고, 여야가 중점적으로 내세웠던 공공임대·공공분양 예산도 일부 주고받는 데에서 마무리됐다.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예산처리 시한(2일)을 22일이나 넘기고서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정치적으로 예산을 배분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25일 확정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도로·철도 분야에서 50억원 이상 증액된 사업은 32개에 달한다. 규모 순으로 보면 부여~익산 서부내륙고속도로 보상비(300억원), 도담~영천 전철(234억원), 춘천~속초 전철(207억원), 서해선 전철(200억원), 별내선 전철(184억원) 등이다.
정부안이 0원이었다가 수십억원대로 증액된 사업들도 있다. 대산~당진 고속도로(80억원), 김천~구미 국도(79억원), 문경~김천 철도(50억원) 등은 정부안이 0원에서 순증했다. 대산~당진 고속도로는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당진)과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충남 서산·태안) 지역구다. 김천~구미 국도와 문경~김천 철도는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경북 김천) 지역구다. 각 지역구 의원들은 자신의 의정활동 성과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들 사업 중 일부는 불용액이 많아 증액해도 지출하지 못하는 ‘지역구 홍보성 증액’ 사업이 될 공산이 크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책정된 도담~영천 복선전철 사업 예산은 2904억원 중 지난 7월 말 기준 810억원이 집행되는 데 그쳤다. 춘천~속초 철도건설 사업도 올해 1270억원 예산 중 211억원만 집행됐다.
규모가 각각 다른 사업이 국회에서 일괄적으로 50억원씩 증액되는 관행도 반복됐다. 함양~울산 고속도로, 광주~강진 고속도로, 문경~김천 철도, 문동~송정 IC국지도 건설 등 사업이 국회를 거치며 50억원씩 늘었다. 정부안에 없던 제주 서귀포시의 유기성 바이오가스화 사업 예산도 62억원 늘었다. 파주 음악 전용 공연장 건립 예산도 30억원 증액됐다. 이들 사업은 각각 위성곤·박정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들 사업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증액됐다기보다는 정치적 고려로 인해 증액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대비 1조793억원 증액해 편성한 공공분양 예산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야당에서 예산 확충을 요구한 공공임대 예산은 정부안 16조9000억원에서 6630억원 증액된 17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정부가 전액 삭감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국회에서 3525억원 순증됐다.
주택 구매 시 정책금리로 융자해주는 사업은 약 6770억원 삭감됐다. 예비비는 6000억원 삭감된 4조6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코로나19 등 비상시 대비용으로 쌓아두는 예비비 삭감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