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청률 20%대를 뚫으며 인기를 끄는 것은 그간 국내 재벌그룹의 황제식 세습 경영 적폐가 우리경제를 어떻게 망쳐왔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사 고객 휴면계좌를 이용한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그룹승계를 위해서라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행태가 적발돼 그룹 경영권을 잃게 되는 장면이 어제 종영한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런데 이같이 과거 재벌 소유 제2 금융기관에서나 횡행한 줄 알았던 행태가 고객 신뢰가 생명인 제1금융권에서도 버젓이 자행되다 적발됐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KB국민은행에 대한 검사를 벌여 기관경고와 함께 과태료 16억1640만원을 부과하고 직원 65명에 주의 등을 조치했다. 금감원이 적발한 사안들은 은행권 매출 1위인 리딩뱅크 국민은행에서 일어난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기가 막힌 행태들로 가득하다. 한 은행 지점은 이미 사망한 고객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명의인이 신청한 것처럼 대리 개설했다. 일부 지점에선 투자자가 작성한 펀드 및 신탁상품의 ‘투자자 정보 확인서’ 내용과 다르게 투자 성향 등급을 ‘공격 투자형’으로 바꾼 사실도 드러났다. 또 고객 신용정보의 부당 이용과 미삭제, 실명 확인 의무 위반, 펀드 및 신탁 불완전 판매 및 녹취 의무 위반 등 비리 행태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KB금융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후진적 경영행태가 6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벌어진 우리금융에만 국한된 게 아님을 보여준다. 그간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국내 금융지주 최초 3연임을 통해 최장수를 기록 중인 윤종규 회장 체제가 타성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환골탈태 하지 않는 한 윤 회장이 올해 초 선포한 ‘ESG 글로벌 리더’ 목표 달성은커녕 수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들에 빌미를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