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전쟁터… 낮은 곳으로 향한 성탄 선물

입력 2022-12-23 03:04
이영훈(오른쪽)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22일 서울 남대문 쪽방촌에 거주 중인 주민에게 식료품 등이 든 ‘사랑의희망박스’를 전달하며 기도해주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부모를 여의고, 결혼도 못 해 혼자인데 신용불량자라 저축도 힘들어요.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죠. 이렇게 살다 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서울역 건너편 이른바 ‘남대문 쪽방촌’에 머무는 홍성수(가명·67)씨는 22일 이렇게 말하며 추위를 피하려는 듯 옷깃을 여몄다. 홍씨는 5년 전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뒤 이곳에 왔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쪽방촌엔 홍씨가 머무는 3.3㎡(1평) 남짓한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의 방 건너편엔 정명식(가명·67)씨도 산다. 20년 넘게 이곳에 거주 중인 정씨는 홍씨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받는 8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월세 25만원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도 했다. 허리를 다쳐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는 정씨는 “방에 웃풍이 들어 겨울이 되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계속되는 강추위로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구세군 한국군국(장만희 사령관), 굿피플(최경배 회장)이 ‘사랑의희망박스’를 전하며 온기 전달에 나섰다.

이들 기관은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과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즉석 밥과 통조림 햄 등이 든 ‘사랑의희망박스’ 700개를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남대문 쪽방촌에서 함께 식료품 상자를 건네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이영훈 목사는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고, 나눌수록 커진다”며 “오늘 이 사랑 실천이 하루짜리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일년 내내 온 국민의 마음이 모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만희 사령관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사랑을 나눠주셨듯 우리도 먼저 이웃들의 추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녹여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소중한 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특별시립남대문쪽방상담소 박종태(57) 소장은 쪽방촌 상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박 소장은 “여기 머무는 422명 중 80%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며 “그동안 용돈이라도 벌도록 상자 포장 등 소일거리가 가능한 공동 작업장을 운영했지만, 코로나로 이마저도 어려웠다. 사회 약자인 이곳 주민들이 사회의 차별 없이, 정서적으로 위로받으며 삶을 꾸려나가도록 관심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전한 온기는 해외에서도 있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한국교회봉사단, 우크라이나전쟁대책위원회와 함께 지난 20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우크라이나 혹한기 위기 극복을 위한 전기 발전기 긴급 지원식’을 진행했다.

세 단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과 함께 혹한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금을 마련해 발전기 30대를 지원했다. KWMA는 24일까지 우크라이나 선교사들의 거점 교회를 중심으로 이를 배분한다.

강대흥 KWMA 사무총장은 “발전기는 추위를 이기는 용도 외에도 휴대전화 충전을 통해 흩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도 사용된다”며 “그들에게 큰 위로의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임보혁 김아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