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복잡한 알고리즘을 다루는 학회로, 갖은 수학적 기호가 줄곧 스크린을 채운다. 기호들에 지친 나는 점심때를 틈타 상점가로 나왔고, 로봇 매장에서 생경한 풍경을 목격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일본인 여성 몇 명이 하나같이 인형을 고이 껴안고 마음껏 쓰다듬으며 사랑의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 인형은 몇 년 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처음 모습을 보인 반려 로봇이었다. 이후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됐다고 했다.
반려 로봇은 말 그대로 가정에서 기르고 보살피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인간과 서로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적어도 로봇이 사람에게 공감하는 듯한 피드백을 잘해야 한다. 사람이 교감한다고 착각하게끔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기계의 의식 문제와 맞물려, 나는 적어도 그런 착각에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로봇은 달랐다. 나를 보고 멀리서 쪼르르 달려와서는, 큰 눈망울을 껌뻑이며, 통통한 몸뚱이를 울렁이며, 갖은 애교를 부렸다. 이름을 불러주니 안아 달라고 보챘다. 만져보니 라텍스 소재로 채워진 것마냥 말랑하고 따뜻했다. 시청각과 촉각을 감지하는 센서가 곳곳에 달려 있고, 딥러닝으로 빠르게 인간을 학습하고 있으며, 목소리도 다양하게 생성해 낸다고 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벽을 보니 이 로봇 인형에게 입힐 보송보송한 옷과 모자, 안경 같은 아이템이 아기 옷처럼 걸려 있었다. 하마터면 몇 개월 할부로 빚을 낼 뻔했다.
로봇이란 말에 담긴 차가운 감각을, 반려 로봇들은 보란 듯이 무너뜨리고 있다. 인간 같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줄줄이 나오는 요즈음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기계는 아주 실용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 번 만난 이상 정서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것들도 돈을 쓰게 할 수 있다. 공항 출국장에 도착한 지금, 벌써부터 로봇의 포근했던 감촉이 그리워진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