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각막을 이식받은 이는 생전에 아내가 그랬듯 자주 성경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간이나 신장 등을 기증받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충남 홍성 광천교회에서 시무하는 이필준(61) 목사는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내는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비극이 시작된 날은 지난 2일이었다. 아내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이 목사는 119에 신고했고 구급차로 병원에 후송돼 수술을 받았다. 뇌동맥이 파열되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한데 아내는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59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생명 나눔의 뜻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고(故) 김주안 사모의 각막 심장 간 췌장 신장 등은 사망 선고가 내려진 뒤 ㈔생명을나누는사람들에 기증됐고, 이를 통해 6명이 새 삶을 얻었다. 이 목사는 “생전 아내의 뜻이 확고했던 만큼 기증을 망설이진 않았다. 자식들 역시 어머니의 뜻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아내는 과거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의사가 담긴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어요. 올해 새롭게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에도 같은 스티커를 붙여 놨었죠. 그만큼 기증에 대한 의지가 강했습니다.”
이 목사가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던 1989년 가을이었다. 두 사람은 짧은 연애 기간을 거친 뒤 이듬해 4월 7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부산에 있는 한 정당의 사무소에서 수행비서로 일하던 이 목사가 훗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아내의 제안 때문이었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든든한 동역자가 돼주었다. 이 목사는 “아내는 정말 착하고 아름다웠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부부에겐 자녀가 2명 있는데 첫째는 충남 서천 십자가교회에서 시무하는 이주환 전도사이고, 둘째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사역하는 이양환 전도사다. 아내의 장례 예배는 지난 17일 광천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생명을나누는사람들 상임이사인 조정진 목사는 감사패를 이 목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통화를 마친 뒤 이 목사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속하니 그곳엔 이 목사의 흥건한 슬픔이 느껴지는 러브레터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아내가 뇌사 판정을 받기 직전인 지난 14일 작성된 글이었다.
“오늘은 함박눈이 옵니다. 당신을 만나 결혼 후 나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천사 같은 당신을 만난 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나의 사랑. 당신을 끝까지 붙잡을 힘이 없지만 나는 사랑합니다. 내 삶이 끝날 때 당신 앞에 기쁨으로 달려가 당신 품에 안길 것입니다. …당신의 십자가, 무거웠던 짐은 다 두고 가세요. 나의 남은 삶이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의 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잘 가요. 천국에서 보십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