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완역본을 읽고 놀랐습니다. 장 발장의 회개 과정이 알던 것과 달랐거든요. 그는 자신에게 숙식을 제공한 미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쳐 달아났다가 헌병들에게 잡혀 오지요. 주교는 그에게 은촛대를 빠뜨렸다며 챙겨줍니다.
주교는 “당장 실신할 사람” 같던 장 발장에게 말합니다.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그런데 여기서 장 발장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극도의 불안과 혼란을 느낄 뿐입니다. ‘차라리 헌병들에게 끌려가서 감옥살이를 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정도지요. 그곳을 떠나 덤불에 앉아 있던 그의 발 앞에 동전이 굴러옵니다. 굴뚝 청소부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는 동전을 발로 밟고는 소년을 쫓아버립니다. 아이가 울면서 떠난 후, 문득 그는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화들짝 놀랍니다. 애써 소년을 찾아보지만 못 찾고 기진하여 쓰러져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는 왜 소년의 돈을 훔쳤을까요. 옛 자아가 최후의 저항에 나섰고 오랜 세월 몸에 익은 짐승 같은 습관이 드러난 겁니다. 그때 그는 자신을 직시했고 지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러웠고” 그렇게 드러난 자신의 영혼은 “무시무시”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사로운 햇빛이 그 생애와 영혼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주교를 통해 장 발장은 기로에 섰습니다. 신부의 용서는 “최대의 공격이요 가장 무서운 타격”이었습니다. 그 인자함에 저항할 수 있다면 “그의 냉혹한 마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될 터였습니다. 인자함에 진다면 타인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심을 놓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갈림길을 느끼며 생각합니다. ‘더 이상 중간은 없다. 나중에 너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가장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너는 주교보다 높이 오르거나 죄수보다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레미제라블’ 1부 1권 1장 제목은 ‘올바른 사람’입니다. 미리엘 주교를 가리키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미리엘 주교를 만나 저항했던 장 발장이 ‘올바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고뇌와 씨름을 거쳐 숱한 난관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 발장의 노력이 전부였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웅적인 노력 와중에 갖가지 도움을 받으니까요. 그가 멈추고 싶었던 지점에서 나타나 길을 열어주고 등을 떠민 이들이 없었다면 그가 끝까지 갈 수 있었겠습니까.
미리엘 주교가 “하나님께 바친” 장 발장은 줄곧 작가의 플롯(이라고 적고 ‘섭리’라고 읽습니다)이라는 형태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지요. 그 은혜는 책 속에 머물지 않고 역사와 우리 인생을 관통합니다. 단테는 그것을 “해와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