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건축사사무소 양민수 대표는 공간에 천착하는 건축사다. 공간의 질을 강조하면서 쾌적한 공간,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이런 공간에는 사회가 반응하고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역설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공간을 구현한 교회는 그 자체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때문에 선교가 된다”면서 “교회 건축은 겉모습이 아니라 이런 공간을 머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최근 작품집을 펴냈다. 여기에는 지난 26년간 교회를 설계하며 공간의 질과 가치를 구현한 교회 20곳을 선정해 실었다.
좋은 공간에선 어떤 느낌이 들까. 건축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건물에 들어서기만 해도 시원하다,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규모는 작아도, 예를 들어 300평 교회인데도 600~700평의 느낌이 든다고 했다. “좋은 공간에선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누굴 만나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습니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즐겁습니다.”
양 대표는 또 공간의 질은 정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동적인 것, 스토리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서서히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것처럼 어떤 공간은 감동을 주기도 하고 시간, 위치에 따라 그 느낌이 극대화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고 건축사가 처음부터 기획한 것이며 이를 위한 기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 대표는 공간의 역할도 강조한다. 특히 공원처럼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고 머물다 가는 공유 공간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교회의 공유 공간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비기독교인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교회의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이런 공간의 질과 가치를 알지 못하고 건축을 외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며 아직 건축을 이해하는 한국교회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했다”며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집에서 그의 공간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곳은 표지 사진에 나오는 태백 예안장로교회의 ‘시은소선교센터’다. 연면적 883㎡의 단층 건물로 카페와 미용실, 교회가 공존한다. 건물에는 십자가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표지 사진에는 여러 작은 동그라미로 구성된 세줄 가로축과 조형물 기둥인 세로축이 만나 십자가를 이룬다. 누워있는 십자가인데 조명이 없으면 가로축은 교회 담장이고 세로축은 기둥으로 보인다. 낮엔 안 보이고 밤에만 보이는 십자가다.
“교회 목사님이 처음에 십자가 없는 3층 건물을 원했어요. 센터니까 일반인도 막 들어올 수 있게 십자가가 안 보이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십자가입니다. 야간에만 보이는 이 십자가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죠. 한 번 더 머물게 되고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가 됩니다.”
가로축 담장은 속의 공간과 성의 공간을 구분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속의 공간엔 카페와 주차장이 있고 담장과 십자가를 지나 뒤로 들어가면 정적인 공간을 만난다. 그 입구엔 일부러 자갈을 깔았다. 자갈 밟는 소리로 고요함과 적막함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큰 유리창이 있고 이를 통해 태백산맥의 한 자락이 보이는데 이것이 사람을 압도하고 겸손하게 만든다고 했다.
양 대표의 의도는 여러모로 적중했다. 20명 성도는 코로나를 지나며 100명이 넘었고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책에는 강원도 양구부터 제주까지 그가 건축한 교회들이 정리돼 있다. 직접 가지 않고 그 느낌들을 느껴보라는 취지다.
양 대표는 한양대학교공학대학원과 국제신학대학원(신학석사)을 졸업했다. 한양대 CCC에서 11년간 성경을 강의하고 연성대 건축과에서 15년간 졸업 설계 지도교수를 했다. 현재 국민일보 교회건축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