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내년 물가는 중장기 목표인 2%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5% 안팎의 고물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지면서 금리 상승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당초 최종금리 수준으로 예상됐던 3.5% 이상으로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은은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은은 매년 6월과 12월 이 보고서를 통해 물가 상황에 대한 평가, 물가안정목표 달성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 등을 밝힌다. 이에 따르면 올해 1~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1% 상승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4.7%)을 넘어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7.5%)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지난 5월 올해 경제전망에서 발표했던 소비자물가 전망치(4.5%)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한은이 예상한 내년과 2024년 물가 상승률은 각각 3.6%, 2.5%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년 중 물가상승률이 상고하저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낮아지더라도 물가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이라며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6.3%에서 지난달 5.0%로 다소 둔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했던 국제유가가 70달러대까지 하락하고 농산물 가격이 상당폭 하락한 영향이다. 다만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연초 2%대 중반에서 지난달 4%대 초중반으로 오름세가 지속됐다.
이는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 영향으로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진 데다 임금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가격에 반영된 결과다. 특히 외식물가는 지난 9월 3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인 9.0%를 기록했다.
향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감산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 등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 유류세 인하 및 전기료 인상 등으로 인한 공공요금 인상, 국내외 경기 둔화 정도,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여부 등이 꼽혔다.
한은은 당분간 고물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을 펼 예정이다. 이에 따라 최종금리 수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 총재는 “11월 경제 데이터만 볼 때는 다수의 금통위원이 3.5% 정도면 과소·과잉 대응이 아니라고 봤으나 이는 경제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세가 언제 꺾일지는 불투명하다. 국제유가 하락과 국내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혼재된 데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도 큰 탓이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대부분 금통위원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