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죽어도 되는 아기는 없어” 말 잇지 못한 판사

입력 2022-12-21 00:04
국민일보DB

“이 세상에 죽어도 된다거나 죽는 게 더 나은 아이는 없습니다…” 20일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 판결문을 읽어가던 판사는 울컥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피고인석에는 녹색 수의를 입은 두 스무살 남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었다. 두 사람은 갓 태어난 자신들의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반년 가까이 수감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권영혜 판사는 영아살해·사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모 A씨(20)와 친부 B씨(20)에게 각각 징역 3년과 2년을 선고했다. 권 판사는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날 새벽 두 사람은

A씨는 지난해 1월 11일 새벽 거주지인 서울 관악구 주택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직후 수건으로 얼굴을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살해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A씨와 B씨는 당시 월세 등 부담으로 동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때는 24주차를 지나 낙태 수술이 어려운 시점이었다. 이들에게는 낙태 비용 500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돈이었다.

진통은 그날 새벽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달이나 빨랐다. 당시 집에는 B씨의 고향 친구들이 놀러와 술을 먹고 잠들어 있었다. 안방 바깥이 조용해질 때까지 진통을 참던 A씨는 이들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B씨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가서 출산을 했다.

세상에 나온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A씨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B씨에게 “못 기르겠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하며 수건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수건을 건넨 B씨는 “못 보겠다. 화장실 문 앞에 있을테니 언제든 불러라.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이가 숨질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처음 시신을 가방에 넣어 싱크대 선반 위에 뒀다가 이후 상의를 거쳐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밑에 숨겼다.

A씨가 유일하게 임신과 출산을 알렸던 친구가 이틀 뒤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정식 사건 접수가 이뤄졌다. A씨와 B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아기가 사망한 채 나왔다”고 진술했는데, 부검 결과 역시 ‘사인 불명’으로 나오자 경찰은 내사 종결했다. 하지만 검찰은 부검 결과에 아이가 산 상태로 출생했을 가능성도 있고, 사산했을지라도 이후 살리기 위한 조치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입건해 정식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검찰 의견에 따라 재조사가 이뤄졌고 “아이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얻어냈다.

“아이 태어나면 본가에 묻겠다”는 살인모의였나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B씨를 영아살해 공범으로 볼 수 있느냐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다. 당초 B씨는 영아살해방조죄로 송치됐었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A씨가 출산 전 B씨에게 “정 안 되면 아이를 낳아 본가가 있는 고향 뒷산에 묻어버리겠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이를 이들이 영아살해를 사전에 모의한 정황으로 보고 두 사람 모두에게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0월 공판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A씨는 “B씨가 입양이나 출산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서 ’아이가 태어나면 본가에 묻어버리겠다’는 말을 몇차례 했느냐”는 질문에 “많이는 아니었다. 2~3차례 정도”라고 답했다.

B씨가 아이를 출산한 A씨에게 수건을 가져다준 행위를 영아살해 공모로 볼 수 있느냐도 쟁점이었다. 사건 당시 B씨는 A씨 요청에 따라 수건을 건네고 화장실 문 밖에 주저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A씨가 아이를 질식시킬 때 쓴 수건이 B씨가 가져다준 수건이었는지, 아니면 아이 낳는 소리를 밖에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이미 입에 물고 있던 수건이었는지 A씨는 법정에서 기억해내지 못했다.

‘공범 맞다’ 법원의 판단

권 판사는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공범이 맞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명시적으로 공모한 것은 아니지만, B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자신이 가진 범죄 의사를 A씨의 영아살해로 실현했기에 공범이 맞다는 취지다.

권 판사는 “A씨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어린 B씨는 아이를 키울만한 경제적 능력도, 양육 의사도 없었다”며 “A씨 (영아살해) 범행으로 미혼 출산에 대한 세상의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사회생활에 있어 더 자유로워지는 등 얻게 될 이익이 B씨에게 있었음이 인정된다. 이는 범행에 가담할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영아살해를 의도했다고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두 사람이 시신을 가방에 넣어 기온이 낮은 베란다에 놓아둔 점을 고려하면 사체은닉 혐의도 인정된다고 했다. 권 판사는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시신을 상의 하에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아래 둔 것은 따뜻한 실내에 둘 경우 부패해 외부에서 신고가 들어올 수 있고 이로 인해 범행이 발각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시신은 부패하지 않았고, A씨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는 등 다른 사정 개입이 없었다면 시신 발견이 아주 곤란했을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A씨가 남긴 최후진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 위축되고 힘들었습니다. 지금의 저처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기는 저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습니다. 어쩌면 좋은 가정에 입양될 수도 있고 제가 정신 차려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며 저보다 행복하게 자랄 수 있던 것인데 저만의 부정적 생각에 빠져 잘못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으로 B까지 범죄자로 만든 게 미안합니다.”
-A씨가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남긴 최후발언

A씨는 지난달 15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최후발언을 하며 내내 울먹였다. 터진 눈물은 법정을 나가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검찰은 “무명의 피해자는 한번도 태명이나 이름으로 따뜻하게 불려보지 못하고 그 부모에 의해 코와 입이 막혀 사망했다”며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했었다.

권 판사도 이날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고,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가치”라며 “살아서 태어났음을 온 힘을 다해 알렸던 피해자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보호자인 부모에게 코와 입이 막혀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생명으로 하여금 세상의 밝은 빛을 보자마자 세상을 떠나게 한 피고인들의 행보는 그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고 죄책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와 B씨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경제적 빈곤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권 판사는 “자신의 어린 자식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피고인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라며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