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아동에게 고기 실컷 먹인다면… 하나님 기뻐하실 것”

입력 2022-12-22 03:06
이용원 기감 서울연회 신임 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연회 본부에서 “임기 동안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용원(66)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서울연회 감독은 감독에 취임하기 전인 지난 10월 중순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결식아동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설문조사를 하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고기를 실컷 먹는 게 아이들 소원이랍니다.”

아마도 지인이 언급한 설문조사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던 2020년 6월 국내 한 NGO가 아동과 보호자 67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동 재난 대응 실태조사’였을 듯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하루 세끼를 모두 챙겨 먹는 아이는 2018년엔 절반을 약간 웃도는 50.1%였으나 2020년엔 그 비율이 35.9%로 급감했다. 아동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결식 위험에 노출된 셈이었다. 코로나 탓에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식사를 거르는 아이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감독은 결식아동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기감 서울연회 본부에서 만난 이 감독은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결식아동에게 고기를 실컷 먹이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감독은 충남 서천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 고기를 사서 먹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이었다.

“당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동네에 잔치가 열릴 때뿐이었어요.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잔칫집 과방(果房·잔치가 열릴 때 음식을 차려놓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공간)으로 향하곤 했어요. 어머니와 저는 사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 모멸감을 느끼면서 그곳에서 고기 산적 등을 받아오곤 했죠.”

이 감독은 기감 서울연회 제22대 감독에 취임한 뒤인 지난달 초 월드비전(회장 조명환)과 공동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 ON 푸드박스’다. ‘사랑 ON 푸드박스’는 12월 한 달간 모금을 진행해 고기가 한가득 담긴 푸드박스 1000개를 만들어 결식아동에게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푸드박스 1개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10만원이니 예산이 총 1억원에 달하는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캠페인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푸드박스 제작 등을 맡을 소상공인 업체 10여 곳과 결식아동을 선정하는 작업은 월드비전이 맡기로 했다.

모든 한국교회가 참여할 수 있지만 기감 서울연회가 중심이 되는 캠페인인 만큼 감리교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 감독은 “감리교회는 누군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뛰어드는 연대감이 강한 집단”이라고 소개했다.

“약간 성급하게 일을 추진한 느낌이 있긴 해요. 하지만 저는 감리교회 특유의 연대주의를 믿고 있습니다. 캠페인에 동참하겠다는 교회나 성도들의 연락이 이어지고 있어요.”

캠페인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감독의 강한 추진력이다. 그는 지난달 초 월드비전 관계자에게 직접 연락해 공동 캠페인을 제안했고, 서울연회 13개 지방회를 담당하는 감리사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달 들어서는 매주 연회 소속 교역자나 성도들에게 홍보 영상을 보내고 있다.

이 감독은 “성탄 헌금 등을 사용할 곳을 미리 정해놓은 교회들이 많지만, 참여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캠페인이 얼마간 성공을 거둔다면 코로나19 탓에 힘든 소상공인을 도우면서 한국교회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 10월 28일 취임식을 하고 임기 2년의 서울연회 감독에 취임했으며 한국 감리교회의 선교 업무를 담당하는 기감 선교국 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사랑 ON 푸드박스’는 그가 감독으로서 벌이는 첫 번째 캠페인이다. 그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목회자가 의욕과 소망을 잃어버린 상태”라며 “모두가 다시 힘을 내는 방법 중 하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함께 벌여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캠페인을 통해 교회들이 나눔의 기쁨을 되새기고 한국교회 이미지도 개선된다면 교회의 회복 역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감 서울연회는 이달 말까지 모금을 진행한 뒤 다음 달 연회 본부에 답지한 후원금을 월드비전에 기탁하게 된다. 이후 월드비전은 결식아동 선정 및 푸드박스 제작을 진행하고, 서울연회 소속 교회들은 푸드박스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거점 역할을 맡는다. 이 감독은 “겨울방학이 있는 1월이면 결식아동이 더 늘어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며 “빨리 일을 진행해 아이들에게 한국교회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푸드박스를 받는 아이들로부터 ‘고기를 실컷 먹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감독으로 일하면서 앞으로도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섬기는 캠페인을 계속 벌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일 테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장애 아동을 위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