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침체로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은이 최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대폭 낮춘 데 이어 총재가 우리 경제가 사실상 불황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직접 거론했다. 중앙은행 총재의 경기 우려가 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선명해졌다는 평가다.
물론 고물가에 대한 고삐도 계속 죄고는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최종 기준금리 수준을 3.5%로 예상했는데 이 총재가 이를 “경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 단적인 예다. 현재 한은 기준금리(연 3.25%)가 도달할 목표치가 상향 조정될 수 있다는 의미여서 이날 국채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내년 통화정책도 올해처럼 물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게 일종의 의무인 만큼 이 총재의 발언이 이례적이라 할 순 없다. 오히려 이 총재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기에 그에 맞는 정책 운용을 하려고 한다”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든다면 경기를 고려해 통화정책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행간의 의미로 보면 매파적 성향을 거두지 않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제롬 파월 의장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한은 전망을 보면 소비자물가는 올해 5.1%에서 내년 3.6%로 크게 낮아진다. 물론 물가안정목표(2%)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지만 체감물가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게 된다. 수입물가를 자극했던 고환율 현상도 최근 해소되는 추세다. 반면 성장과 고용면에서는 한파 경고음이 거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취업자수 증가폭이 올해에 비해 10분의 1 토막이 날 것으로 봤다. 기업들은 일찌감치 긴축 경영에 나섰고 잘 나가는 은행권조차 3000여명의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다. 올 3분기 국내 대기업 공장 가동률은 78.4%로 지난해 동기(80.5%)는 물론 역성장을 보인 2020년 3분기(79.4%)보다도 낮았다. 국가 재정은 올해까지 3년째 100조원 안팎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와 달리 재정 정책에 기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교하고 선제적인 금리 결정, 기업 규제 완화 등 한은과 정부의 정책 조합이 중요한 이유다. 내년 상반기의 경제 춘궁기를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한국호의 미래가 달렸음을 당국은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