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4명의 공기업 수장 가운데 3명이 소위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산업부 블랙리스트를 포함한 공공기관 낙하산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전임 문재인정부와 비슷한 관행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공기관 낙하산 금지 원칙을 공언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일보가 1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350곳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5월 이후 지금까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의 수장이 교체됐다. 공기업 36개 중 4개가 새 수장을 맞이한 것이다. 이 중 한수원을 제외한 3곳의 공기업 사장에 정부와 가깝거나 보수 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가 임명됐다.
지난달 임명된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부동산 정책 입안을 담당했다. 이 사장은 교통연구원 부원장과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을 지냈지만 주된 경력이 교통분야라는 비판을 받았다. 도시와 개발, 주택 건설·공급을 담당하는 LH의 수장을 맡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을 둘러싼 전문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최 사장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지냈고, 20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의원을 역임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도 활동했다. 최 사장 역시 에너지 분야 경력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1차 사장 공모에서 자격 미달로 고배를 마셨지만 다시 도전해 결국 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정 사장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대전 대덕구청장을 거쳐 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윤석열 대선 캠프에 합류해 상임정무특보를 맡았지만 에너지 관련 경험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 사장은 사장직 지원 과정에서 회사 홈페이지 내용을 복사한 수준의 직무수행계획서를 제출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과 한국전력발(發) 적자 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들 비전문가 출신 수장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해당 인사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됐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 기조는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인 지난해 10월 한 토론회에서 캠프 출신 낙하산 인사에 대해 “저는 그런 거 안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내년에는 110곳이 넘는 공공기관장이 교체될 예정이어서 정부가 본격적으로 낙하산 관행 끊어내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며 “정치 네트워크에 따른 낙하산 인사 기조를 중단해야 공공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신준섭 신재희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