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제한 재정준칙 논의 뒷전… 연내 법제화 무산되나

입력 2022-12-19 04:04

재정지표가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재정준칙이 연내 법제화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놓고 강경 대치를 이어가며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전환의 첫 단추부터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중앙정부 채무는 1038조2000억원에 달한다. 나랏빚은 문재인정부에서 급격히 늘었다. 문재인정부 초기인 2017년까지만 해도 국가채무는 660조2000억원이었지만, 5년 새 400조원 가량 증가했다. 문재인정부가 원래부터 확장재정 기조를 강조했던 데다가, 코로나19사태까지 겹친 영향이 컸다.

윤석열정부는 건전재정 기조 전환을 기치로 내세우며 그 첫 단계로 재정준칙 도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이후 중장기 재정전략인 ‘재정비전 2050’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예산·세법을 둘러싼 여야 대립 속에 재정준칙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표류중이다.

이미 재정준칙 도입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준칙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5개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한정하면 한국·캐나다·튀르키예를 제외한 3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영중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캐나다의 경우 1998~2005년 동안 재정준칙을 운영했기 때문에 실제 한국과 튀르키예만 재정준칙 운영 경험이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현시점을 재정준칙 도입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현안 대응을 위한 재정수요에 더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가 구조적으로 재정여건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며 “재정혁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첫걸음은 재정준칙의 법제화”라고 강조했다.

야당도 재정준칙 도입 자체에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재정준칙 도입 의지를 밝혔을 때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재정준칙 도입은 원래 전통적으로 야당이 찬성하고, 여당이 반대해왔던 사안”이라며 “전 정부 때보다 지금 기류가 달라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내에서는 올해 법제화를 넘기면 재정준칙 도입이 요원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에는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등 경기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기 둔화 시기 재정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재정의 구속력을 더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3대 신용평가사에서 이미 한국의 국가채무 위험성을 경고한 만큼, 재정준칙 도입이 불발될 시 국가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