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마을버스… 열악한 근로조건이 행인 덮쳤다

입력 2022-12-19 04:06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마을버스가 지난 12일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방파제 인근에서 컨테이너와 부딪힌 뒤 멈춰섰다. 이 과정에서 50대 여성이 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에서 미끄러진 마을버스에 50대 여성이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배경에는 화장실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용변 볼 시간도 없는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 기사는 업무 투입 열흘밖에 되지 않은 신참으로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30대 마을버스 기사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A씨는 시동을 켠 채 기어를 중립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만 채우고 자리를 비웠다. 부주의로 인해 차량이 미끄러졌을 공산이 크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사고는 앞서 지난 12일 오전 9시29분쯤 해운대구 청사포 방파제 주차장 인근에서 발생했다. 정차 중이던 마을버스가 비탈길에서 100m가량 미끄러지면서 50대 여성 B씨가 치여 숨졌다. 당시 A씨는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업계 종사자들은 기사가 시동을 끄지 않고 급히 운전석을 떠난 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고 운수업체에 따르면 소속 기사들은 오전 시간대의 경우 운행 일정이 빠듯해 25분 운행, 5분 휴식을 반복하고 있다. 교통 사정으로 운행이 늦어지면 그나마 5분 휴식도 갖지 못한다. 최근에는 노선 여러 곳에 신호등이 늘어 시간을 맞추기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마을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시간이 없다 보니 기사가 사이드 브레이크만 당긴 채 (화장실에) 다녀온 걸로 보인다”며 “이전에도 해당 업체 소속 기사들이 ‘너무 바쁘다. 휴식시간을 더 달라’고 사측에 항의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고 기사가 초보였던 점도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당시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운전대를 잡은 지 약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버스 운전기사 일도 이 업체가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측은 “3개월간의 ‘도제식’ 수습교육으로 기본 안전수칙을 교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 관계자는 “사고 버스처럼 작은 차량은 사이드 브레이크의 힘이 약해서 시동도 끄고 기어까지 조절해야 제대로 정차가 된다”며 “회사에서 당연히 교육했어야 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당초 종점에 있던 화장실이 사라진 점도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던 종점 화장실이 지난 8월 태풍 ‘힌남노’ 상륙 때 망가진 이후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인근의 해녀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곳을 사용하려면 가파른 비탈에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