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지난 15일 손영신(김포하이교회) 목사와 조미경 사모, 성도들이 경기도 김포의 한 허름한 주택을 찾았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를 막 지나왔는데 불과 몇백m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 사이로 낡은 집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어머니, 김포하이교횝니다.” 손 목사 목소리에 이미순(가명·82)씨가 반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아이고, 날이 추운데. 이쪽으로 오세요.” 아직도 연탄불로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이씨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권한다. “어머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좋아요.”
김포 토박이인 이씨는 2000년 남편을 위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2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다. 슬하에 다섯 남매가 있지만 각자 살기가 바빠 어머니 집에 자주 들르진 못한다. 이씨의 건강을 챙기는 건 김포하이교회가 보내는 우유 한 팩이다. 김포하이교회는 지난 1월부터 사단법인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이사장 호용한 목사)을 통해 이씨에게 주 3회 우유를 전하고 있다.
옥수중앙교회에서 시작된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은 독거 어르신에게 우유를 배달하며 고독사를 예방하는 사역이다. 우유가방 속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지역주민센터 등에 연락이 간다. 전국 교회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현재 3600여명의 어르신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8월 코로나19에 걸렸다. 밥을 할 힘도 없고 먹을 힘도 없었는데 배달되는 우유를 먹으며 연명했다”며 “이렇게 받아먹기만 해도 되는 건지….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손 목사 손을 잡았다. 지금은 우유 배달원들이 우유를 전하지만 6월까지만 해도 김포하이교회 성도들이 직접 우유를 배달했다. 이씨는 “매주 토요일에는 아이 셋을 데리고 젊은 부부가 우유를 가져왔다. 마치 내 손주 보는 것 같이 반갑고 참 예뻤다”고 말했다.
“어머니, 살아계시는 동안 끝까지 우유를 배달해 드릴게요. 신앙생활 잘하시고 건강하세요.” 손 목사와 성도들이 일어나자 이씨는 대문까지 나와 눈을 맞으며 오랫동안 그들을 배웅했다.
김포하이교회는 2019년 설립된 개척교회다.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작한 게 우유배달이었다. 아직 장로도 세우지 못한 미조직교회지만 한 달에 10개 가정은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 목사는 “지역주민센터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추천받았다.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주소만 받을 수 있어 집마다 방문해 우유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며 “허락한 이들을 대상으로 동선을 짠 뒤 20여명의 성도가 돌아가면서 우유를 배달했다”고 설명했다.
무릎 수술로 2주간 병원에 입원했던 한 성도는 어르신들이 기다린다며 퇴원하는 길에 우유를 받아 배달하기도 했다. 출근 시간을 쪼개 배달한 성도도, 퇴근 후 회식이 있어도 우유 배달은 빼먹지 않은 성도도 있었다. 김영애 권사는 “새벽 기도가 끝나고 출근 전에 우유를 배달했다. 동역자들과 서로 격려하며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며 “어르신들의 건강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출근하는 길이 참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성도들의 정성에 어르신들의 마음도 열렸다. 조 사모는 “혼자 암 투병을 하는 어머니께 우유를 전해드렸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나면 문밖으로 나오셔서 본인 이야기를 한참 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러셨을까. 다음 집으로 배달을 가야 해서 오래 들어드리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팠지만 이런 분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드린 것 같아 기뻤다”고 덧붙였다.
우유 배달을 받는 가정이 10곳에서 40곳으로 늘면서 작은 개척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아 지금은 배달원이 우유를 배달한다. 그러나 김포하이교회는 지금도 어르신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픈 곳은 없는지, 우유가 잘 배달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손 목사는 “1인가구의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상황에 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자주 찾아뵙는 것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라며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해 우리 주변에서 잊혀진 채 임종을 맞는 어르신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