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현재의 인생)’에 바쁜 중년 남성들까지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11회차 만에 시청률 20%를 가뿐히 돌파했다. 상반기 인기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치면서 올해 최고 히트 드라마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지난 17일 방영된 13회차에 시청률 22.5%를 기록한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총수 일가를 위해 헌신한 주인공 윤현우(송중기)가 갑자기 죽임을 당하면서 시작됐다. 의문의 죽음 이후 그는 1987년을 살고 있는 순양그룹의 손자 진도준으로 회귀한다. 그러면서 순양의 창업주인 진양철(이성민) 회장을 만난다.
도준과 진 회장을 투톱으로 내세우면서 이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은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2030에게는 인생 ‘리셋’의 쾌감을 주고, 4060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의 기억을 환기한다. 정석희 대중문화 평론가는 “중장년층 남성 시청률이 유입돼야 시청률이 오른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도준의 발자취를 따라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노태우 집권부터 대한항공(KAL)기 폭파 사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주식 버블 등 중장년층이 직접 몸으로 겪어 온 역사의 풍파를 담았다. 당시 실제 뉴스 보도 장면을 넣기도 하면서 리얼리티와 픽션을 오간다. 그만큼 몰입도도 높아졌다.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는 “현실에서 취재한 것을 극적으로 가공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사건과 극적 상상력을 편집한 점이 흥미롭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청자가 도준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일들을 먼저 알았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하게 만들면서 과거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중의 욕망까지 건드린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매번 회자됐다. 이성민이 표현해낸 진양철 자체가 이 드라마의 저력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 평론가는 “진양철 자체가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실제로는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성민은 이마저 존경할만한 사람처럼 그려 낸다”고 극찬했다. 이성민은 진양철이 노쇠해지는 과정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87년에 힘차고 당당하게 걷던 진양철은 회차가 거듭할수록 점점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걸음걸이도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사실과 픽션을 오가는 스토리를 보면서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과 기업을 유추하는 재미도 있다. 진양철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을 떠오르게 한다. 이성민이 쓰는 경상도 사투리와 머리 스타일, 안경테 등이 이 회장의 모습과 유사하다. 순양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고, 여러 악재가 있어도 반도체 산업을 뚝심 있게 끌고 가는 점도 삼성과 닮았다.
도준 역시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재벌 3세의 모습과 다르다.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할 바에 순양을 ‘사겠다’는 포부를 내보인다. ‘1회차’ 인생에선 가난에 힘들어했던 도준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활용해 백발백중 투자에 성공하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다만 혹여 재벌 미화로 받아들여 질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윤석진 평론가는 “도준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 극에서는 복수로 표현되지만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들”이라며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결말에서 잘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