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늑장 대응 감추려… 소방청 ‘문서조작’ 지시에 집단반발

입력 2022-12-16 04:06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발생한 압사사고로 경찰과 소방이 현장 수습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태원 참사 직후 소방청 지휘부가 내부 문건 작성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기록하려다 실무진의 집단반발을 샀던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 당국이 늑장 대응 문제를 감추기 위해 공문서에 손을 댄 구체적 정황이 잡힌 것이다. 특히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와 관련된 대목에 집중적으로 허위 내용이 기재된 것으로 파악돼 소방청 차원의 조직적 조작 의혹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1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특수본은 중앙긴급구조통제단(중앙통제단) 가동과 관련해 상부에서 허위 문서 작성 지시가 내려왔었다는 복수의 소방청 내부 진술을 최근 확보했다. 소방청 실무자들은 “중앙통제단이 실제보다 빨리 구성된 것처럼 문서를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위 공문서 작성을 시킨 것으로 지목된 소방청 간부는 “외부에서는 소방 시스템을 잘 몰라 괜찮다”고 회유하면서 ‘인사상 불이익’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특수본은 이 같은 진술과 정황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은 그간 소방청의 공식 설명과는 배치된다. 소방청이 작성한 운영계획서에는 중앙통제단이 지난 10월 29일 오전부터 가동된 것으로 돼 있는데, 실제 해당 문건은 이튿날인 10월 30일 작성돼 허위 의혹이 있었다. 이에 소방청은 중앙통제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됐지만, 문서는 사후에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또 소방청이 작성한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남 직무대리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51분 상황판단회의를 주재하고 2분 만에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적혀 있다. 회의가 단 2분 만에 종료됐다는 얘기인데, 특수본은 남 직무대리가 당시 회의를 제대로 주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구체적 경위를 수사 중이다.

특수본은 소방청 차원의 늑장 대응과 그에 따른 구조 지연으로 인명 피해가 더 커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재난안전법은 긴급구조활동이 필요한 경우 소방청에 중앙통제단을 두고, 소방청장이 단장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구조활동의 사령탑 역할인 것이다.

용산구청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5일 새로 구입한 아이폰의 비밀번호를 지난달 말에야 수사팀에 제공했으며, 문인환 안전건설교통국장은 참사 이후 ‘휴대전화를 화장실 변기에 빠뜨렸다’며 기기를 새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이들에 대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