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는? 추우면 시설로 오세요” 한파 녹이는 노숙인 상담사

입력 2022-12-16 04:06
노숙인 거리상담반 상담사들이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 아래에서 노숙인에게 핫팩과 양말 등 방한용품을 건네주면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14일 오후 8시쯤.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 아래 미동도 없는 이불더미 쪽으로 거리상담사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한 이불 앞에 선 상담사는 “아저씨!”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이불 속에서 한 남성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추위 탓에 양 볼이 새빨갛게 얼어 있었다.

“어제 받은 침낭은 어디 갔어요?” 상담사가 익숙하게 말을 걸자 남성은 “이불만 있어도 난 충분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주는 건 얇은 돗자리뿐이었다. 상담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럼 자리라도 옮겨서 여기 말고 저쪽에 누우세요. 바람이 덜 올 거예요”라고 안내했다. 걸음을 옮기기 전 노숙인 품에 핫팩과 넥워머, 양말 등 방한용품도 잔뜩 안겨줬다.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이날 서울교 아래에는 얇은 은박지를 덧씌운 1인용 텐트 여러 개가 칼바람에 들썩거리고 있었다. 롱패딩에 방한 바지 차림을 한 상담사들이 텐트와 이불더미 사이를 오가며 노숙인들을 챙겼다.

영등포구청 소속 기간제 근로자인 이들은 3개 조로 나뉘어 8시간씩 24시간 내내 영등포구 일대의 노숙인 밀집 지역을 순찰한다. 엄동설한에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등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다니며 노숙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시설과 연계해 주는 일까지 병행한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강해지고 기온이 더욱 쌀쌀해지자 상담사들은 방한용품으로 채워진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저씨 저희 왔어요. 계세요?” 상담사들은 혹시나 못 들을까 큰 목소리로 몇 번이나 소리치면서 텐트 근처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불안한 듯 몇 차례 텐트를 흔들기도 했다. 그제야 느릿하게 열리는 텐트 지퍼 사이로 먹다 남긴 컵라면과 생수병이 눈에 들어왔다. 노숙인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상담사들은 억지로 시설로 연계하려 애쓰기보단 “아픈 덴 없으시냐”고 안부를 물으며 핫팩 등의 보온용품을 나눠줬다. 이미 다리 아래에 터를 잡은 노숙인들을 강제로 시설로 옮겨가게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대신 이들이 한파를 견뎌낼 수 있게 최소한의 지원을 하는 것이다.

실제 이날도 서울교부터 영등포 고가 아래까지 가며 만난 20여명의 노숙인들은 한파특보가 내려질 정도의 추위에도 한 명도 시설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추우면 꼭 시설로 오시라”는 상담사들의 당부에 “알아, 알아”라고 대답만 할 뿐 다시 다리 밑 열악한 잠자리로 파고들었다.

한 상담사는 “매일같이 들여다보니까 이분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다 알고 있다”며 “(알고 지낸 지) 오래돼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같이 얘기 나누기도 어려운 분들”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결국 우리가 하려는 일은 거리에 계신 분들을 시설로 연계해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우리 덕분에 나중에 번듯한 일자리를 구했다고 할 때 제일 뿌듯하다”고 했다. 상담사들은 언 몸을 녹이러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글·사진=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