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기론 손에 꼽을만큼 아름다운 봄이야. 초목들이 더 못 기다리고 터져 나왔어. 그렇게 춥더니. 이렇게 푸르러.”
패디가 말했다. 패디는 영화감독 리처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동료, 연인이다. 암 투병 끝에 패디는 세상을 떠나고, 리처드는 절망한다. 무작정 스코틀랜드행 열차에 올라탄 리처드 앞에 이민자 추방센터 감시관 브리터니와 열두 살 소녀 플로렌스가 나타난다. 그들과 함께 한 여정의 끝에서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던 리처드는 봄을 맞이한다.
‘봄’은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중 세 번째 소설이다.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트럼프 이후의 세계에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난민 문제, 기후 위기, 소셜미디어(SNS)의 폐단에 주목한다.
소설은 어둡고 분노에 차 있다. 그러면서도 치유와 희망을 그려낸다. 인간 세상의 일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사람들은 예술을 매개체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젊은 세대에 믿음을 갖는다.
앨리 스미스의 독특한 문체는 낯설게 다가온다. 특유의 언어유희는 절망적인 시대에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 시대를 살아남는 방법들이 있어요, 더블딕씨. 그중 하나는 이야기가 되어 나오는 형태라고 난 생각해요”라는 패디의 말은 SNS 시대에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앨리 스미스의 자기 선언으로 읽힌다.
작가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진행된 2016년 ‘가을’을 내고 ‘겨울’, ‘봄’에 이어 ‘여름’을 지난해 출간하면서 계절 4부작을 마무리지었다. ‘여름’은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를 합치면서 서로 다른 정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다른 사회적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화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태어난 저자는 지금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좋아해’ ‘호텔 월드’ ‘우연한 방문객’ 등 18권의 책을 썼으며, 그의 작품들은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둘 다 되는 법’으로 2015년 베일리스 여성 문학상, 골드스미스상, 코스타상을 받았다. ‘여름’으로 지난해 오웰상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