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산술상 주69시간까지 근무를 허용하는 내용의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자 정보통신기술(IT) 업계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주52시간 근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현재도 현장에선 ‘꼼수 연장근무’가 만연한데, 아예 근무시간의 상한을 높이면 과로 노출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게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11년 차 개발자 A씨는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검토되자 ‘크런치 모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일정 기간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크런치 모드가 끝나면 장기간의 휴가를 보내는 등 추가업무를 한 만큼 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선 크런치 모드가 악용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업무 지시가 내려오면서 ‘긴급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A씨는 14일 “주52시간을 강제했을 땐 과징금이 나와서 회사도 그 이상으로는 일을 안 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래도 ‘일을 적게 해서 개발 속도가 느려졌다’며 불평하는 분위기였다”며 “주69시간이 가능해지면 사람을 늘리기보단 한 사람이 일하는 시간을 늘릴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업계 특성상 근무시간을 초과했다고 해서 혼자 퇴근하기도 어렵다. 내부 경쟁이 심한 사내 분위기 탓에 추가업무를 강요받는 일은 일상이다. A씨는 “상사가 ‘옆 팀은 프로젝트에 성공했다고 하는 데 우리도 성공해서 돈도 벌고 이력도 쌓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면서 추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며 “다른 팀원들은 야근하는데 혼자만 귀가하면 금세 배신자로 낙인찍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노동개혁 권고안에 대해 “합법적으로 개발자들을 과로에 노출시키는 권고문”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IT 사업장에서 근무 시간이 검사되지 않도록 인터넷 접속 정보만 꺼둔 상태에서 연장근무를 시키거나, 퇴근한 뒤 근처 카페에 재집결해 작업을 마무리하는 등의 ‘꼼수’가 벌어진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환민 IT노조 부위원장은 “주52시간제는 사측과의 근로시간 협상에서 협상력을 키워주는 근거였다”며 “개발자들에겐 근로시간도 계약 일부인데 경영계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노동개혁안이 바뀌면 근로시간 자체가 늘어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특히 수요가 탄력적으로 몰리는 업종이 타격을 먼저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과로사 판단을 할 때 1주일 평균 60시간을 기준으로 하는데 (주69시간은) 이미 9시간을 초과한다”며 “주요 업종별로 연장근로 시간 관리를 적용할 수 있는 횟수 제한 등 가이드라인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