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되던 옛이야기들을 누가 문자로 정리했을까. 아마도 지식인들이고 대부분은 남성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이야기들이 가부장적 관념에 의해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편집에 의해 그 이야기들을 전하던 여성의 목소리가 제거된 게 아닐까. 옛이야기 모임 회원인 심조원 작가의 이런 의심은 적중했다. 노인들이 구술한 옛이야기들을 채록한 ‘한국구비문학대계’나 ‘한국구전설화’ 등을 보면, 구전된 옛이야기들과 문자로 정리된 옛이야기들은 사뭇 달랐다.
‘우렁이 각시’는 우렁이 껍질 속에서 몰래 나와 밥 차려 놓고 가는 아름다운 처녀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이 착한 처녀가 순박한 총각과 잘 살았다는 게 결말이다. 하지만 구술 채록본에 따르면, 지나가던 원님(혹은 나라님)이 고생하는 우렁이 각시를 데려가 같이 사는 걸로 돼있다. 남겨진 총각은 각시를 구박하던 어머니를 원망하다가 죽어서 새가 된다. 저자는 “여성들은 이 이야기에서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힌 채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자신들을 위로하고자 했는지 모른다”고 해석했다.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가 아이들만 데리고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구전에서는 나무꾼이 선녀를 찾아 하늘로 간 얘기가 이어진다. 나무꾼은 하늘 사람이 되는 시험을 가까스로 통과한 후 어머니를 보고 오겠다며 집에 가는데, “어서 들어오너라”는 어머니의 말에 “말에서 내리지 말라”는 선녀의 경고를 어기고 만다. 그렇게 말은 하늘로 되돌아가고 그는 다시 하늘로 가지 못한다. 저자는 “모성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해 끝내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아들”의 이야기로 읽는다.
책은 두 이야기 외에도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콩쥐팥쥐’ 등 모두 22편의 옛이야기들을 여성 구술본에 의지해 재구성한다. 콩쥐 이야기는 “가부장제의 방임과 학대를 딛고 노동과 연대의 힘으로 강인하게 살아남은 여성의 생존기”로 다시 태어난다.
저자는 “옛이야기는 대부분 여성들의 ‘말’이었다”면서 “‘효자로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다 보면 평생 말없이 밥해 주는 예쁜 여성을 얻는다’는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