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 국민건강보험 재정 우려는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단기적으로는 문재인정부에서 보장성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생긴 손해를 비롯해 코로나19 대응,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등이 영향을 미쳤다. 장기적으로도 의료비 지출이 큰 고령층의 급증 등 여러 적자 요소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내년부터 건보 당기수지는 적자로 전환된다. 지난해 말 기준 20조2410억원이던 건보 준비금도 2026년 9조4000억원으로 5년 만에 절반 넘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 2029년엔 전액 소진되고 2040년에는 누적적자가 6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정부 재정 지원이 종료된다는 가정하에 부과체계 2단계 개편, 직장가입자의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 등 소득세제 개편,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등의 요소를 반영한 추산이다.
건보 재정 손실이 의료 보장성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의 직격탄을 맞은 탓인지는 아직 명확하진 않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수년간 의료기관 이용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공단은 문재인 케어 시행 초기인 2018년 월평균 입·내원 일수가 2018년 1.77일로 늘어나면서 2조8243억원 손해를 봤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는 이 수치가 1.55일까지 떨어지며 오히려 2조8229억원 흑자를 봤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공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입·내원 일수는 1.71일로 코로나19 유행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이미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공단 재정은 1조7017억원 적자를 봤다. 준비금의 약 8.4%가 증발한 셈이다. 여름 이후 일상의료체계 회복이 본격화된 점을 감안하면 입·내원 일수는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격적인 계산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셈이다.
보장성 확대로 인한 손해를 문재인정부 탓만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건보 보장성 확대는 역대 정부를 가리지 않고 추진돼 온 과제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급여 확대를 위해 세 차례에 걸쳐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을 실시했다. 2014∼2018년에는 20조9624억원을 들여 4대 중증질환 선별급여, 자기공명영상(MRI) 보험적용 확대, 초음파 보험적용 확대, 3대 비급여 해소 추진, 생애주기 필수의료보장, 본인부담상한액 7단계 차등 등을 추진했다.
재정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건보 예상수입액의 20%를 지원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올해로 기한이 끝난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6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야당 측은 기한 폐지로 지원을 항구화하는 방안을, 정부·여당은 지원 기한 5년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 지원을 없애고 건보 재정을 기금화하는 안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방안에 대해 향후 국회 상황에 따라 건보 정책과 재정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